신문로

지방소멸과 청소년

2024-08-21 13:00:01 게재

십여년 전 귀농학교를 운영하고 있을 때, 교사를 하다가 은퇴한 교육생이 저녁을 먹으며 자랑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이 딸을 둘 두었는데 공부를 그럭저럭 잘해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보낼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역의 대학에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지역 남자와 결혼하고 직장을 잘 다니고 있으며 둘 다 근처에 살고 있어 거의 매일 손자, 손녀를 보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딸아이를 서울의 대학에 보냈다면 서울에 살았을 것이고 이런 행복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 말했다. 서운하게 생각했던 딸들도 그때 아빠의 결정이 옳았다고 말하더란다.

그날 오후 교육에서 지역의 청년인구 감소를 이야기한 것에 대해 본인의 경험과 생각을 보탠 것이었다. 얼마 전 운전을 하다가 우연히 육아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방송에 나온 전문가는 한 가정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 가정의 부모는 아들을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영어학원에 보냈고 성장단계에 맞추어 최고의 사교육을 받게 했고 좋은 영어 실력과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 명문대학에 들어가 지금은 국제적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그 부모는 정작 아들이 너무 바빠 자신들이 죽고 난 뒤에 장례식 때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며 불평하고 있다며 전문가는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며,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역에 남는 것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생각

내가 전북 완주에서 했던 일의 하나는 농촌에 살고 싶다는 도시 청년을 대상으로 작은 학교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이 학교를 운영하면서 삼십여 명 가까운 청년들이 짧게는 몇달, 길게는 일년 이상 함께 공부하면서 지역을 탐색하였고 일부는 완주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그런데 지역의 청소년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학교에서 공부하면 좋겠다 싶어 교육생 모집 안내문을 관내 고등학교에 보내보았다. 예상과 달리 단 한건의 문의와 상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역에서 청소년 상담을 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농촌학교의 교사와 학생 모두 졸업 이후 지역에 남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더 나아가 지역에 남는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처럼 생각한다고 말해주었다. 또한 농촌지역의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대학에 못가거나 도시로 가지 못하면 교육을 잘못시킨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이런 생각은 시작되었을까 알고 싶어 농촌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진로 교육을 살펴보았다. 진로교육은 단지 직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꿈을 만드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지만, 소개하는 직업은 대부분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농업이 중심 산업인 농촌의 학교에서, 부모가 농부인 아이들이 많지만, 권하는 직업에 농부는 없었다. 지역에 남아 사는 것은, 농촌에서 농부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꿈이 될 수 없다는 것인가.

농촌지역에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특히 젊은 사람이 없어 무슨 일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무조건 도시로 가라고 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도시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지 않은가. 이후에 그 청년학교를 정식으로 운영하기 위해 협동조합의 인가를 받는 과정에서 직업학교가 아니라 진로교육을 포함하게 되었다. 진로교육은 단순히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아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내가 행복할 것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그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인지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역에 사는 행복 알려주어야

도시에서의 삶이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아 농촌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의 행복도 지역에서 찾아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엉뚱한 대도시에서 찾지 말자. 우리 아이들에게 지역에 사는 행복을 알려주자. 미국의 로펌에 다니는 아들을 만들어 낸 부모보다 자기 동네에서 매일 손자, 손녀를 돌보며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하자.

흔히 말하는 성공보다 그러한 일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자. 농촌지역의 아이들이 지역에서의 이러한 행복한 일상을 상상할 수 없다면 지방소멸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임경수

퍼머컬처 전문가

로컬플랫폼 브랜드쿡 C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