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념전쟁?… 대통령과 거리두는 국민의힘
“반국가세력” 발언에 논평도 발언도 ‘0’
“비판도 지지도 못하고 못마땅한 침묵”
민주당 등 야권 “색깔론 망령 불러내나”
또다른 이념전쟁의 서막일까, 여권 투톱(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주도권 경쟁의 연장선일까. 윤석열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발언을 놓고 여당 내부에서 나오는 관전평이다. 다만 풍성한 내부평과 달리 공개 발언이나 공식 논평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한동훈 대표 체제 출범 후 윤 대통령 발언을 지지하기도, 반대하기도 어려운 당내 사정이 반영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복절 경축사의 ‘반자유세력’에 이어 ‘반국가세력’ 발언까지 나오자 야권에선 거센 반발이 나왔다. “색깔론 망령을 불러내 상황을 모면하려 하나”(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이념전쟁이라도 벌이고 싶은 건가”(조국혁신당 논평) 등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북한의 위협’을 뜻하는 것이라고 뒤늦게 ‘해례본’을 내놨지만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
더 주목할 것은 여당의 반응이다. 여당에선 대통령 발언 이후 사흘째 지지도 비판도 없는 묘한 침묵만 흐르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난해 광복절에 ‘반국가세력’을 지목했을 때 “대통령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공식 논평을 내며 지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여당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지지도 비판도 하지 못하고 침묵만 하고 있다는 건 ‘대통령이 도대체 왜 저러지’라는 못마땅한 마음이 당내에 있다는 뜻 아니겠냐”고 여당의 침묵을 풀이했다. 한동훈 대표 체제 출범 후 중도층을 겨냥해 민생 방향으로 달려가는 이때 대통령이 또 ‘이념전쟁’을 꺼내들며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 깔려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 대표는 취임 후 전기료 감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의 민생 이슈를 적극적으로 던지며 중도층, 수도권, 청년층을 향한 민생 메시지를 던져 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독립기념관장 논란에 이어 반국가세력 이슈까지 던지며 한 대표와 주도권 경쟁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중이다. 윤 대통령은 이달 말 연금 등 4대 개혁에 대한 국정브리핑도 예고한 바 있다. 이 여당 관계자는 “일부러 훼방을 놓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같은 여당의 반응과 별개로 이념투쟁을 부추기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안팎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21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대통령이 맥락도 없이 뜬금없이 반국가세력 이야기를 꺼냈다”면서 “어떤 근거를 들며 이야기했다면 비판을 하든 지지를 하든 할 텐데, 어떤 논거도 없이 이야기를 하니 다소 시대 퇴행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벼랑 끝에 몰리다 보니 대통령이 자신을 확실하게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극우 쪽으로 가까이 가는 듯한 발언만 하는 것 같다”면서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이든 국민들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여당 관계자는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인기가 너무 떨어지니까 당시 여당에게 ‘계륵’같은 존재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냐”면서 “지금 윤 대통령이 여당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형선 이재걸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