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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

2024-08-22 13:00:02 게재

정부가 정보공개 청구를 제한하는 법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7월 31일 행정안전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부당하거나 사회 통념상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 내용이다. 악의적 반복적 청구 등 정보공개 오남용 사례가 증가해 공공기관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행정력 낭비가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보공개와 공무원 보호는 다른 문제

상습 과도 악의적 정보공개 청구는 그동안 공무원 사회는 물론 관련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도 심각하게 여겨온 문제다. 올 1분기만 하더라도 불과 10명이 16만건이 넘는 청구 건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기관 또는 공무원에 대해 불만을 품고 괴롭힐 목적으로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정보공개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국민의 알권리와 정부의 투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부당하거나 사회 통념상 과도한 요구’라는 모호하고 자의적인 기준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무력화할 수 있다면 이는 헌법적 기본권이자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에 해당하는 중요한 가치를 너무나 가볍게 취급하는 처사다. 악성 민원 해결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시민단체와 관련 학계도 이런 이유로 정보공개 청구 남용 방지를 위한 법 개정에 반대해왔다.

정보공개제도는 1998년 정보공개법 시행 후 26년 동안 많은 질적 양적 성장을 이뤘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행정감시의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일반 국민에게는 행정정보에 접근하는 유용한 통로가 됐다. 2004년부터 도입된 사전공개제도는 여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정보공개를 통한 국민 감시와 통제가 부분적이긴 하지만 일부 권력기관의 성역에 균열을 내기도 했다. 문제점도 많이 드러났다. 대통령실 법무부 검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이나 외교부 국방부 등 안보관련기관의 비밀주의는 여전하다. 정보공개 거부로 인한 행정소송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 특수활동비 사례에서 보듯이 대법원 판례가 수립된 건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정보 부존재’를 이유로 비공개하면 불복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정보가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더 기막힌 것은 이런 법 위반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입틀막’ 정부

정보공개법을 개선하려면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부터 손을 대는 것이 먼저다. 정보공개 범주를 확대하고 비공개 대상 정보를 세분화하며 정보 부존재 불복 절차를 확보하는 방안 등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처벌 규정 신설에 대해서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지만 적어도 정보가 있는데 없다고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라든가 과실이 아닌 고의로 부존재라고 속이는 경우는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청구권 오남용에 대한 대책으로는 정보공개법 개정이 아니라 학계와 시민단체가 제시하는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민원처리법)이나 시스템 개선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석열정부가 정보공개제도 개선에 진정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행안부가 정보공개청구권을 제한하는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로 그날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강행했고, 그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거부했다. 대통령실부터 정보공개센터 등 시민단체가 청구한 직원 명단과 운영규정 등 가장 기초적인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의대 2000명 증원 배정 회의록 등 정부 여러 부처에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거나 폐기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민 전체에 대한 ‘입틀막’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자신이 한 일을 기록으로 말하고 시민은 그것을 알 권리, 즉 정보공개청구권을 가진다. ‘기록 대통령’으로 불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는 명언을 남겼다. 모든 국정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기록 공개를 거부하거나 꺼린다면, 또 기록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기록을 폐기했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제 국민이 안다. 정보공개법 개정을 비롯한 정보공개정책의 전면적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