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과도한 조치’ 반발…소송 제기한 회계법인 패소

2024-08-23 13:00:01 게재

‘품질관리 감리’ 제재에 법적대응했지만, 법원 ‘정당한 조치’ 판단

금융당국·회계업계 갈등 표출된 사건 … ‘감리 강화’ 탄력받을 듯

줄소송 검토했던 회계법인 대응 주목 … 항소심에서 연대 가능성도

금융당국을 상대로 ‘품질관리 감리’ 제재조치 취소소송을 제기한 회계법인이 1심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이번 소송은 회계법인에 대한 ‘품질관리 감리’ 강화 이후 회계법인들의 반발이 커진 가운데 진행되면서 소송결과에 회계업계와 금융당국의 이목이 집중됐던 사안이다.

회계법인이 승소했다면 “과도한 감리”라는 회계업계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돼 품질관리 감리에 제동이 걸릴 수 있었지만 이번 판결로 금융당국의 회계법인 품질관리 강화 조치가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A회계법인이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권고 처분 등 취소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A회계법인은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품질관리 감리에서 품질관리업무 담당이사가 61일간 부재했고, 법인 전체 수준의 인사관리 및 보상체계 관리 미흡 등 7개 부문에서 지적을 받았다. 그 결과 시정권고와 함께 지정점수에서 180점이 제외되는 제재조치가 부과됐다.

A회계법인은 지정제외 점수 부과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 집행정지 신청과 본안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금융당국의 조치는 판결 전까지 중단됐다.

하지만 본안 소송에서 법원이 금융당국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제재의 효력이 살아나게 됐다.

금융당국과 회계업계는 ‘품질관리 미흡’과 관련한 사실관계 다툼 보다는 지정제외점수 부과에 대한 법적 근거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법원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회계법인의 손을 들어줄 경우 다른 회계법인들에 대한 조치도 정당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증선위는 지난달 14개 회계법인에 대한 품질관리 감리 결과에 따른 개선권고사항을 공개했다. 이들 회계법인 상당수는 ‘상장법인 감사인 등록요건 유지의무 위반’으로 지정제외점수를 부과받았다.

지정제외점수 부과에 대해 회계법인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상장법인의 외부감사인을 직접 지정하는 ‘주기적 감사인지정제’를 시행하면서 회계법인들은 지정점수에 따라 외부감사를 맡게 될 기업을 배정받는다. 지정점수가 높을수록 더 많은 기업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있다. 지정제외점수가 부과되면 외부감사를 맡는 기업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A회계법인이 승소했다면 지정제외점수를 부과받은 회계법인들의 소송제기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이번 패소 판결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판결에 따라 조치 근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감사인 등록제도가 시행된 이후 상장법인 외부감사는 일정 기준을 통과한 등록회계법인에 한해서만 가능해졌다. 금융당국은 상장법인의 외부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등록회계법인들을 상대로 품질관리 강화를 요구해왔다. 핵심은 통합 품질관리시스템 구축이다. 등록회계법인들이 품질관리의 효과성·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회계법인 내 인사, 수입·지출의 자금관리, 회계처리, 내부통제, 감사업무수임 및 품질관리 등 경영 전반의 통합관리를 위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품질관리 감리 강화’도 이 같은 흐름에서 진행돼왔다. 하지만 등록회계법인들은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의 경영과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금융당국과 회계업계 간 대립이 표출된 대표적 사례가 이번 A회계법인 소송이고, 이번 판결은 갈등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A회계법인이 항소를 할 경우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 등록회계법인들은 1심에서 A회계법인을 공동 지원하려고 했지만 소송결과를 지켜보자며 한발 물러났다. 항소심이 진행될 경우 등록회계법인들이 연대해서 조직적인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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