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차기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과감한 외교

2024-08-23 13:00:01 게재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 결과 10월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대통령이 10년 임기(연임)를 마치고 대중적 인기 속에 물러난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는 러닝메이트로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을 내세워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프라보워 당선자는 32년 장기 집권한 수하르트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군부장성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2014년, 2019년 대선에서 패하자 조코위 대통령이 대선 경쟁자였던 그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프라보워 당선자의 전략적 외교 행보

프라보워 당선자는 조코위의 정책 승계를 공언했으나 벌써 외교부문, 수도(首都) 이전 문제에서 의견 차이를 보인다. 이 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경제외교에 중점을 두고 조용한 외교를 펼쳤으나 프라보워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지난 3개월 동안 10개국을 방문했고 첫 방문지로 중국을 택했다. 이어 일본을 방문하면서 한국을 건너뛰었다. 두번째 여행지로 중동, 유럽, 러시아를 택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해외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국제관례이다. 그는 이를 무시했고 접수국들도 그를 정상급으로 대우했다.

필자는 이달 초 자카르타를 방문해 학자, 언론인, 전직 외교관들을 만났다. 그들은 그의 파격적인 외교 행보를 반기는 눈치였다. 이 나라의 외교기조는 ‘자유롭고 능동적인’(free and active) 외교 정책이다. 이념에 얽매이거나 큰 나라 눈치 보지 말고(free), 능동적으로 국가이익을 추구하라(active)는 말이다. 프라보워는 중국, 러시아 대통령과 국방협력까지 논의했다. 미국과 유럽의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이와 관련 미국에 대한 동남아의 호감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감도가 몇년 전부터 계속 떨어졌고 이스라엘의 가자 지역 침공 이후 한층 악화됐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학살을 방관하고 있다는 분노가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싱가포르 연구소가 지난해 시행했던 설문 조사에서 ‘미중 가운데 한 나라만 선택한다면 어느 나라를 선택할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인도네시아 지식인 73%가 중국을 선택했다. 프라보워 당선자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나 국제정세에 밝고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5% 성장을 실현해 지속 성장 토대를 마련했다. 2023년 경제 규모(GDP)는 1조3700억달러로 세계 16위이다(한국 14위). 그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중국이 최대 교역 상대이며 해외 투자(FDI)의 30%가 중국과 홍콩에서 들어온다. 자카르타-반둥 철도 등 인프라 건설에,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인 니켈 광산 등 지하자원 개발에도 중국 투자가 많이 들어왔다.

프라보워의 경제정책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만약 현 정부처럼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취한다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수도(首都) 이전 문제는 현 대통령의 최대 역점 사업이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 투입이 필요하고 프라보워가 큰 열정을 보이지 않고 있어 사업 속도가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인도네시아와 관계 이대로 좋은가

한·인도네시아 관계는 경제를 중심으로 착실히 발전하고 있다. 2300개 업체가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1조원 이상의 투자가 제철, 전기 자동차와 배터리, 화학 공업, 전력발전, 금융 등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과거 봉제 섬유 신발 등 낮은 임금을 겨냥한 노동 집약 사업이 주류였으나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필자의 인도네시아 경험에 비추어 대규모 투자와 정부 수주 사업에는 대통령 차원 외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 기업이 전기차 현지 생산을 위해 투자했으나 이 나라가 제3국의 전기 완성차 수입을 허용, 역차별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 방산품 최대 수출시장의 하나이지만 한국 차세대 전투기(KF-21), 잠수함 구매를 위한 협상이 중단됐다.

프라보워의 글로벌 외교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 나라는 아세안의 맹주로서 앞으로 브릭스(BRICS) 가입,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외교 활용 등 글로벌 외교를 전개할 것이다.

남반구와 북반구 저위도의 개발도상국을 뜻하는 글로벌 사우스는 자원과 인구를 무기로 세계 경제·외교에서 최근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남북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일지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을 내세워 대응하는 방안은 백해무익이다.

대통령 취임식 전에 프라보워 당선자와의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취임식에 고위급 인사 파견도 필요하다. 인도네시아는 과거 우리 대통령 취임식에 부통령을 파견했다.

이선진

전 주 인도네시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