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소비자 기후행동…기업에게 새 과제
소비재에 숨은 간접배출 감축에 큰 영향
변화해야 하는 건 기후 아닌 인간의 마음
“온실가스 감축이 시급한데,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탄소 감축 노력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실가스를 많이 뿜어내는 제품을 택하지 않게 되면 결국 기업들도 변화할 수밖에 없거든요.”
21일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전지구가 몸살을 앓는 가운데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상황이다.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 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부정론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이미 수차례 기후 대응 정책과 역행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2017년 대통령 재임 시절 파리협정(Paris Agreement) 탈퇴를 선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환경 규제 완화와 화석 연료 사용 지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파리협정은 당사국인 197개국이 모두 의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2℃보다 훨씬 아래(well below)로 유지해야 하고 1.5℃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 교수는 “속도 차이가 있을 뿐 기후위기 대응은 미래세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시대적 흐름”이라며 “소비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의 기후변화 교육 관련 구호 처럼 ‘변화해야 하는 건 결국 기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실제로 국제 학술지 ‘기술예측과 사회 변화(Technological Forecasting & Social Change)’에 실린 ‘기업의 환경 보호 활동을 이끄는 대중의 관심: 그 효과와 경로’ 논문에 따르면, 특히 북미 유럽 호주 등 고소득 국가의 개별 가구에서 어떠한 소비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가구의 기후 효과와 관련해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의 약 1/3(33.6%)만이 직접 배출에 의해 발생하는 반면 소비재에 내재된 간접 배출은 66.4%로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간접적인 효과는 △에너지 제품(19.0%) △상품(24.4%) △서비스(23.1%)에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이 온실가스 감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플라스틱 프리 재단(Plastic Free Foundation)에서는 ‘플라스틱 없는 7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매년 7월을 전세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일회용 플라스틱을 거부해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기업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게 기본 취지다. 화석연료로 만든 플라스틱은 석유 및 가스 추출·정제, 분해, 소각 전단계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플라스틱 프리 재단에 따르면 2022년 ‘플라스틱 없는 7월 운동’으로 플라스틱 소비가 30만톤 감소했다. 또한 잉글랜드 골프의 경우 1760개 제휴 클럽과 잉글랜드 골프 챔피언십 전반에 걸쳐 골프인들에게 대나무 티(골프에서 공을 올려놓는 대)와 재사용 가능하거나 비플라스틱 음식 및 음료 포장을 선택하도록 장려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소비자들이 주축이 된 다양한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22일에는 소비자기후행동과 기후솔루션 회원들이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본부 앞에서 가진 소비자 녹색전기 선택권 보장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석탄·가스 발전 대신 재생에너지원으로 생산되는 전기를 사용하고 싶지만 개인의 재생에너지 전력 거래가 제한되고 있다며 소비자 기본권 침해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김은정 소비자기후행동 대표는 “친환경에너지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위해) 추가 비용까지 부담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절반에 달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며 “화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소비해야만 하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녹색 전기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침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가정에서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사용하고 싶어도 별도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