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 해법 찾는 섬마을 사람들

2024-08-26 13:00:01 게재

행안부 ‘섬 지역 특성화사업’ 눈길

35개 마을 주민들, 소득사업 모색

섬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영토적·지정학적 가치를 넘어 경제적 가치, 환경적 가치까지 주목받고 있다.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 같은 다양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소멸 위기는 육지보다 더 심각하다. 불편한 생활여건과 줄어드는 일자리, 지리적 고립성 때문에 주민들이 섬을 떠나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더 이상 섬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안전부가 한국섬진흥원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섬 지역 특성화사업’은 어쩌면 작은 희망일 수 있다. 특히 개발 중심의 토목사업이 대부분인 기존 정책과 달리 주민들 스스로 섬 마을이 지속가능하도록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의미를 둔 사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에 내일신문은 모두 5회에 걸쳐 섬 특성화사업과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인 권역별 대표 섬들을 통해 지속가능한 섬 마을의 가능성을 점검한다. <편집자주>

인천 옹진군 덕적면 서포리 바갓수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해 전경. 우리 섬은 이처럼 곳곳에 그림같은 비경을 품고 있다. 덕적도 김신일 기자

섬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육지의 농·산촌 마을이 사라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 섬 3383개 가운데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지난해 말 기준 473곳이다. 7곳 중 1곳에만 사람이 살고 있는 셈이다. 1980년 유인도 숫자는 987개였다. 섬 3곳 중 1곳 꼴로 사람이 살았다는 얘기다. 불과 40여년 만에 500개가 넘는 섬 마을이 사라졌다. 지속가능한 섬 마을을 만들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섬 소멸속도 육지의 8배 = 행안부에 따르면 섬 마을의 소멸 속도는 육지에 비해 8배나 빠르다. 최근 7년간 전국 인구는 0.7% 감소했는데 섬 인구는 그보다 8배 높은 5.7% 줄어들었다. 고령화율도 육지에 비해 훨씬 높다. 2022년 9월 기준 우리나라 섬의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은 27.6%다. 이는 전국 평균(17.8%)과 비교해 10%p 가까이 높은 비율이다.

실제 인구 210여명이 사는 전남 여수 화태도의 노인 인구는 110명이다. 2015년 돌섬과 연결되는 다리가 생겨 차로 육지를 오갈 수 있게 됐는데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섬진흥원이 예측한 바에 따르면 2042년에는 섬 인구가 지금보다 18.1%나 더 줄어들 전망이다. 전국 평균(3.5% 감소)과 비교해 무려 5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인구감소와 소멸위기가 비단 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섬의 소멸은 영토 주권의 축소를 의미하는 만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들은 그동안 섬에 대한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대부분 개발 중심의 토목사업에 치우쳐 있었다.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마을의 소멸을 막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행정안전부가 섬진흥원과 함께 추진 중인 ‘섬 지역 특성화사업’은 눈여겨볼만하다. 주민들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섬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과는 다른 접근방식인 셈이다.

◆‘주민 의지·역량’ 최우선 = 섬 지역 특성화사업의 핵심 목표는 ‘지속가능한 섬 마을 조성’이다. 이를 위해 섬의 여러 자원을 활용해 마을발전계획을 수립, 소득사업과 마을활성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한다.

이 사업이 섬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다른 국가·지자체 사업들과 다른 점은 주민 스스로 조직체를 구성해 마을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민이 자발적 의사를 갖고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야 사업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사업대상 마을을 선정하는 첫번째 기준은 주민의 의지와 역량이다.

섬 특성화사업은 모두 4단계로 진행된다. 총 사업비는 마을별 50억원, 사업기간은 9년이다. 이 중 1단계가 바로 섬 주민 역량기반을 조성하는 일이다.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조직을 만든 뒤 섬 자원을 조사하고, 주력사업을 발굴하는 단계다. 시범사업을 운영해보고 마을발전계획도 수립한다. 이 기간이 최소 2년 소요된다.

2단계는 사업방향이 어느 정도 확정됐을 때 진행한다. 사업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사업기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어 3단계는 2단계에서 진행한 사업을 확장하거나 다른 사업과 연계하는 과정을 밟는다. 특히 3단계에는 사업방향이 구체적으로 확정됐다고 보고 3년간 기반시설 조성에 20억원, 역량강화 사업에 10억원 등을 지원해 집중적으로 사업 외연을 확대해 나간다. 마지막 4단계는 그동안의 사업성과를 토대로 마을조직이 외부 지원 없이도 수익 기반을 마련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다.

◆섬진흥원 출범 후 사업 확산 = 섬 특성화사업의 대상은 특수상황지역(섬발전촉진법에 따른 개발대상섬)으로 지정된 188개 섬이다. 각 섬마다 1개 마을을 선정해 지원한다. 현재 사업이 추진 중인 마을은 모두 35곳이다. 그 중 24곳은 1단계 사업이 진행 중이다. 사업 초기에는 사업의 특성상 주민들이 스스로 주체로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부터 한국섬진흥원이 본격적으로 섬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사업에 참여하려는 마을이 급격히 늘어났다.

소득사업 개발이라는 방향은 같지만 방식은 마을마다 천차만별이다. 충남 보령시 삽시도 주민들은 선착장 마을장터를 열기로 했고, 인천 옹진군 덕적도 으름실마을 주민들은 표고버섯 스마트팜을 통해 마을 소득을 올릴 계획이다. 경남 거제시 황덕도와 전남 여수시 화태도 주민들은 각각 양식하고 있는 수산물을 가공식품으로 개발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와 전북 군산시 개야도, 경남 통영시 비진도처럼 관광과 체험을 주제로 특성화사업을 추진하는 곳도 있다. 모두 주민들 스스로 고민해 찾아낸 사업방향이다.

노광민 섬진흥원 진흥사업팀장은 “섬진흥원이 마을 주민들과 상시 소통하면서 다양한 논의들을 하고 있고, 지원조직인 자문(PM)단이 각 단계별로 맞춤형 지원을 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자신감을 갖고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아직은 사업 초기 단계지만 이미 많은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지자체 만족도 높아 = 지자체와 섬 마을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그동안 다른 정부·지자체 사업과는 달리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돼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이미 사업 진행 과정에서 성과를 체험하고 있다.

2단계 사업이 진행 중인 여수 화태도의 황광현 어촌계장은 “수십억 수백억짜리 정부지원사업도 경험해 봤지만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사업을 구상해보는 과정이 보람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3단계 사업을 준비 중인 거제시 황덕도 김영주 사무국장은 “그동안 아무리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던 마을 안 CCTV와 구판장을 마을 주민들 주도로 설치할 수 있었다”며 “섬 특성화사업을 통해 이미 마을의 변화가 시작돼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자체들도 사업 초기부터 성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윤영안 인천 옹진군 도서특성화팀장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의 논의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다른 사업에는 없는 장점”이라며 “마을 주체들의 역량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한수 전남 여수시 도서개발팀 차장도 “이 사업은 3·4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2단계에 멈추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이미 1·2단계를 진행하는 동안 주민들이 스스로 역량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섬 특성화사업 이외에도 다양한 마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본 동력과 경험이 생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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