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는 ‘온플법 제정’…여당 일각서도 “온플법은 민생법안”
정부 ‘갑을분야는 자율규제’ 기조 정했지만 티메프 사태 뒤 논란 커져
기존법 개정은 ‘땜질식’ 지적 … 야권 “민생법안, 여당도 반대 안할 것”
티몬·위메프의 미정산 사태로 소비자와 판매사 피해가 점차 커지고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해 플랫폼업체의 법률적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형플랫폼과 거래업체간 갑을관계를 규율하는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야권은 이미 온플법 제정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정기국회에서 제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아직 미온적이다. 플랫폼 갑을분야의 문제는 자율규제에 맡긴다는 게 정책기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여당에서도 기류변화가 감지된다. 티메프 사태 이후 플랫폼 독과점 폐해를 ‘민생 문제’로 보고 온플법 제정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서다. 여당이 온플법을 민생법안으로 판단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온플법 제정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법개정 추진하는 정부 = 2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통신판매중개업자’인 플랫폼의 대금 정산 기한을 법으로 정하고, 결제 대금 별도 관리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온플법 제정에는 다소 부정적이다. 신속한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법 제정보다 기존 법 개정이 효과적이란 이유에서다. 정부가 아직 ‘플랫폼 자율규제’ 정책기조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정도 작용했다. 공정위 핵심관계자는 “(티메프 사태 정책대안 중) 온플법 제정은 좀 결이 다른 문제”라며 “플랫폼 대금 정산 기한 축소와 결제대금 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법 개정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티메프 사태가 플랫폼과 거래업체간 전반적 갑을관계에서 비롯됐고 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온플법 제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은 ‘온플법 제정’에 대한 충분한 여론조성이 되지 않았다는 판단인 셈이다.
◆여당 기류 바뀔까 =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선 사태 초기에는 정부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플법 제정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정산과 환불 취소 사태가 알렛츠 등 다른 플랫폼으로 확산하고, 소비자 피해가 커지면서 ‘제도개선’의 수위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최근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티몬·위메프 사태 대응과 관련해 독자적인 온플법 제정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정산사태 뿐만 아니라 최근 배달 플랫폼 수수료 일방 인상 등 일련의 흐름이 ‘온플법 제정’ 목소리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현행법으로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의 불공정행위를 모두 규율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만큼,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는 별도의 규제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여당 일각에서 플랫폼법을 민생법안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여야가 ‘플랫폼법=민생법안’이라고 공감한다면 정부도 법 제정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야권은 사실상 온플법 제정을 티메프 사태 이후 ‘1호 민생법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에만 플랫폼 관련 법안을 8건 발의했다. 티몬·위메프 사태 발생 이후 발의된 법안에는 정산 주기를 법제화하거나, 중개 수수료의 상한을 정하는 등 강력한 규제 내용도 포함됐다.
◆티메프 미정산금 1조3천억 = 한편 티메프가 판매업체에 지급하지 않은 미정산금액 총액이 1조3000억원으로 최종 집계됐다. 정부는 기존 1조6000억원 규모의 피해업체 유동성 공급 등 지원대책을 이행하는 한편, 관련법 개정 등 근본적 제도개선을 추진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3일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위메프·티몬 사태 관련 관계부처 TF 회의를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피해업체 수는 4만8124개사였다. 이 가운데 미정산액 1000만원 미만 업체는 4만3493개사로 90.4%를 차지했다. 피해금액 기준으로 따지면, 피해액 1억원 이상인 981개 업체의 합산액이 1조1261억원으로 88.1%를 차지했다.
업종별 피해업체 수는 생활·문화업체가 1만4422개(30.0%)로 가장 많고, 이어 식품 8479개(17.7%), 패션·잡화 6759개(14.0%), 디지털·가전 4607개(9.6%) 등이었다.
업종별 피해금액은 디지털·가전이 3708억원(29.0%)으로 가장 컸고, 상품권 3228억원(25.2%), 식품 1275억원(10.0%), 생활·문화 1129억원(8.8%) 등이 뒤를 이었다.
사업자등록증 주소지 기준 지역별 피해업체 수는 인천·경기가 2만1344개(44.4%)로 가장 많았고, 부산·경남 9649개(20.1%), 서울 9237(19.2%) 등이 뒤를 이었다. 지역별 피해액은 서울(8431억원)에 65.9%가 집중됐다.
정부는 앞서 발표한 총 1조6000억원(중앙정부 6300억원+α, 지자체 1조원+α) 규모 유동성 공급방안을 신속 집행하는 한편,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적극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부는 피해업체 지원자금 금리 인하 조치에 나섰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기존 금리 3.51%)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3.4%) 긴급경영안정자금의 금리는 2.5%로 낮추기로 했다.
또 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 금융지원 프로그램 금리(3.9%~4.5%)는 3.3%~4.4%로 내리고, 보증료(3억원 이하는 0.5%, 3억원 이상은 최대 1.0%)는 0.5% 단일보증료를 최대 2년까지 적용한다. 이에 따라 기업부담(금리+보증료)은 3.8%~4.9%로 내려간다.
정부는 주요 입법과제를 포함해 조만간 제도개선안 골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