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

기후변화 대응의 나비효과

2024-08-28 13:00:01 게재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주목하고 그에 따른 위험성을 공론화시킨 인물은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스크립츠 해양연구소장이자 기후과학자였던 로저 르빌이었다. 르빌은 40여년에 걸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기록한 찰스 킬링의 과학적 관측 결과에 확신을 가지고 1965년 존슨 대통령에게 기후변화 위험성에 대해 보고했다. 지구온난화가 정치적 의제로 등장한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당시 월남전을 치르기 바빴던 존슨도, 워터게이트 수렁에서의 닉슨도, 심지어 1970년대 세계 오일쇼크로 인한 대체에너지 발굴에 진심이었던 카터조차도 이 문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는 그저 과학적 이론에 불과했다.

1960년대 후반 하버드로 옮긴 르빌로부터 영향을 받은 학생 중에는 앨 고어라는 인물이 있었다. 고어는 1984년 상원의원이 되자 기후변화 문제를 이슈화시키기로 하고 일곱명의 의원을 규합했다. 그중의 한명이었던 팀 워스 상원의원은 1988년 6월 기후변화와 온실가스의 영향을 논의하기 위한 의회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 청문회의 스타는 당시 미우주항공국 고다드 우주연구소장 제임스 한센이었다. 한센은 지구온난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는 화석연료 사용과 관련된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 주장하고, 현재 상황이 계속되면 2025년에서 2050년 사이에 지구의 온도는 최대 5℃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증언은 다음 날 뉴욕타임즈에 대서특필되었다. 기후변화 문제가 대중적 관심사로 등장한 순간이었다.

르빌의 문제제기가 반세기 후 공론화

한편 유럽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이슈화시킨 인물은 옥스포드에서 화학을 전공한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였다. 임기 초반 영국 최대 노조였던 탄광 노조의 1년여에 걸친 대규모 파업을 종식시킨 후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대처는 1989년 11월 유엔총회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경고하는 연설을 했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기후변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후변화 문제 공론화의 결과로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기본협약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협약의 목적인 기후변화와 관련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후속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최대 쟁점은 온실가스를 누가 얼마나 감축하는가였다. 과거 배출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과 미래 감축에 대한 개도국의 부담이 문제였다.

1997년 교토의정서에는 논란 끝에 선진국 중심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부과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미국은 끝내 이를 비준하지 않았다. 이를 교훈 삼아 2015년 파리기후변화 협약은 모든 참여국가들의 자발적 감축 형식으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이 합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오랫동안 개도국으로 분류되었으나 미국과 함께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으로 부상한 중국이었다. 어느샌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세계 경제질서에서의 역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 협약에서 탈퇴한 것도 이러한 중국의 부상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내 진보세력의 지원을 받았지만 집권 후 이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급진적 주장들을 모두 수용하지는 않았다. 바이든은 이들의 불만을 노련하게 무마시키며 시장을 통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이 법안의 이면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을 기회로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이는 그동안 에너지 전환 산업을 국가 주력산업으로 설정하고 전세계 공급망 시장의 80% 이상의 규모로 성장시킨 중국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르빌이 정치권을 설득시키고자 고군분투했던 기후변화 문제는 반세기가 지나 전 세계경제 무대의 한 축으로 등장한 것이다.

미 대선 결과 따른 불확실성 대비해야

기후변화와 관련된 또 다른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 대선 정국에서 승기를 잡았던 공화당 트럼프는 재집권 시 파리기후변화 협약을 다시 탈퇴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 해리스 부통령이 갑자기 차기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현재의 바이든 대통령과 맥을 같이 할 것이나 보다 진보적인 정책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해리스는 바이든과는 결이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든 해리스든 또 다른 나비효과를 주목하고 대비해야 할 불확실성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손정락 카이스트 초빙교수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