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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반일 논쟁과 사회적 비용

2024-08-28 13:00:01 게재

올해 광복절은 유난히 짜증나고 복잡한 하루였다. 우선 공식적인 기념행사부터 정부와 광복회가 따로 거행했다. 표면적으로는 광복회를 비롯한 민족주의 단체와 진보 진영이 정부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한 유관 기관의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에 반발한 것이 파행의 원인이다.

건국절 논란도 대립을 격화시켰다. 강원도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아니라 제1공화국 정부가 출범한 1948년 8월 15일이라는 뉴라이트측 견해를 지지하는 도지사에 반발한 인사들이 광복절 기념식 도중 퇴장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근대화 발전이라는 지상과제를 달성하는 작업이 민족주의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실현과 양립될 수 있느냐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표면으로 떠오른다. 간단하게 말해 한국의 발전은 외세와 독재의 덕분이었다는 것이 박정희 찬양론이나 식민지근대화론의 요점이다. 이를 긍정하면 보수 산업화세력이고 비판하면 진보 민주화세력이 된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에는 정치적으로 보수에 속하는 인사들도 뉴라이트 비판에 가세했으므로 상황이 복잡해졌다.

국치일 맞아 역사에서 교훈 찾으려면

8월 29일, 내일은 국치일이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주권을 상실하고 일본에 병합된 날이다.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치욕의 날이지만 뉴라이트의 입장에서는 무능한 조선왕조의 탐학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적 발전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지리적 경계와 수량적 지표를 기준으로 보면 식민지 조선에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민족과 계급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일본 자본가와 친일파가 조선의 민중을 수탈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공장에서도 조선인이 고급 엔지니어가 되는 길은 철저하게 봉쇄했다. 일본제철이 운영하던 진남포제철소에 조선인 공대 졸업생이 공채를 거쳐 최초로 입사한 시점은 1944년이었다. 장항제련소에서는 일본인들이 철수한 후 조선인 노동자들은 용광로에 불을 때는 방법도 몰랐다. 청진제철소 출신의 초대 한국인 제련소장이 와서 불을 다시 지폈다. 이분은 서울 대학로 방송통신대 자리에 있던 광산전문학교 1944년도 졸업생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는 빈껍데기 발전에 불과했다. 그나마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아있던 산업 시설은 사실상 모두 파괴되었다.

한국에서 일본과 관련된 논란은 국제 문제와 국내 문제가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국치일을 맞아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면 구한국 정부는 국권을 일본에 넘겨줄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고 친일파의 준동을 제압하지 못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조선이 개항한 1876년에서 1910년에 이르는 34년의 기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일본의 개항은 1854년, 메이지유신은 1868년이었다. 한일의 근대화를 향한 출발 시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일본은 사무라이 계층을 중심으로 하향적 근대화를 추진하는 주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반면 조선 왕실과 양반 지배세력은 자기들의 안위가 국가 발전보다 중요했으므로 내정 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개혁을 추진한 세력인 김옥균 등의 개화파와 서재필 등의 독립협회는 정치권력 장악에 실패했다. 미래지향적 개혁파를 배제한 조선은 열강의 먹잇감이 되었다.

집권세력부터 불필요한 논쟁 중단하길

친일파를 준엄하게 규탄하면 당장 속은 시원하지만 무엇인가 허전하다. 한국의 개인소득이 일본을 능가하는 세상에서 친일파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물론 현재 진행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는 불길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국의 의향이 강하게 작용한다. 친일 반일을 뛰어넘는 글로벌한 쟁점이다. 오히려 국내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보수세력이 북한에 적대적이고 내부 사회개혁에도 소극적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친일파를 규탄하는 민족주의자나 진보세력도 사회개혁의 과제를 적극 추진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친일 반일의 논쟁이 가열되면 여야, 재야를 망라한 정치세력은 복잡한 정책논쟁을 회피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이러한 퇴영적 구도에서 국민이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정을 운영하는 집권세력부터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키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종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겸직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