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치권 ‘딥페이크 성범죄’와 전쟁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경찰 대대적 단속 … 여·야 정치권도 입법 등 대책 마련 나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찰이 지인 또는 소셜미디어 이용자의 사진을 합성해 만든 딥페이크(Deepfake) 허위영상물 기반의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다. 또 교육당국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학생들 사이에서 급격하게 확산하자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딥페이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법안들이 장기간 국회에 계류돼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8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7개월간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특별 집중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도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단속을 벌여 딥페이크 제작부터 유포까지 철저히 추적·검거할 계획이다. 또 딥페이크 탐지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분석, 국제공조 등 수사에 필요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제작·유포 철저히 추적” = 경찰은 딥페이크 성범죄 위협이 커진 데 대해 “합성을 위해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함께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 검색만으로 딥페이크봇 등에 접속해 허위 영상물 등을 제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SNS에서 참여자들끼리 특정 지역 및 학교의 공통 지인을 찾아 그 지인을 대상으로 허위 영상물을 공유하는 일명 ‘겹지방’이 운영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범행 수법이 구체화·체계화되고 있다”면서 “시급히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경찰이 집계한 허위 영상물 등 범죄 관련 발생 건수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으로 계속 늘었으며 올해 들어 7개월간 297건으로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특히 경찰은 딥페이크 대상이 아동·청소년일 경우 아동·청소년성착취물에 해당하므로 더욱 엄격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실제로 딥페이크 피해자 3명 가운데 1명 이상은 미성년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로부터 딥페이크 피해 지원을 요청한 781명 가운데 36.9%(288명)는 10대 이하였다.
피해 지원을 요청한 미성년자는 2022년 64명에서 2024년(8월 25일 기준) 288명으로 2년 만에 4.5배가 됐다. 같은 기간 전체 피해 지원 요청자가 212명에서 781명으로 3.7배 증가한 속도보다 더 가파르다.
현행법상 딥페이크 성착취의 피해자가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이면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아동·청소년성착취물의 제작·배포 등)가 적용돼 문제 영상을 소지·시청하면 1년 이상의 징역, 제작·배포할 경우 최소 징역 3년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된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최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허위 영상물 등 범죄 혐의로 입건된 전체 피의자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65.4%, 2022년 61.2%에서 2023년 75.8%로 커졌다. 올해 1~7월은 73.6%로 역시 높은 수준이다.
이에 대응해 경찰은 학교전담경찰관(SPO)을 중심으로 범죄첩보 수집, 경각심 제고를 위한 사례 중심 예방 교육·홍보 등의 활동을 병행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딥페이크 성범죄는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는 중대한 범죄로, 발본색원해 국민 불안감을 불식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민의 적극적인 신고·제보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단속은 앞서 윤 대통령이 27일 딥페이크를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를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강력히 대응하라고 지시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딥페이크 영상물은 ‘단순 장난’이라고 둘러대기도 하지만, 익명의 보호막에 기대 기술을 악용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우리 누구나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관계 당국에서는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를 통해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 달라”며 “건전한 디지털 문화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교육 방안도 강구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출입기자단 오찬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입법이 필요하면 국회와 협의해 추진하고, 기본적으로는 이런 것(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교육도 처벌과 같이 가야 한다”며 “마약과 같은 수준의 단속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사실상 범정부차원 대응을 시사했다.
◆교육당국도 대안 마련에 분주 = 사정이 이렇자 교육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교육부는 최근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디지털 성범죄 대응 및 예방을 위한 교육 안내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 학생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타인의 정보를 전송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을 실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교육부는 “최근 불법으로 사진을 합성하는 일명 ‘딥페이크’ 사진 성범죄물이 사이버 공간의 단체 대화방에서 공유되는 사례가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즉시 신고기관에 도움을 요청해 피해 확산과 2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교육당국은 타인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음란물을 합성해 유포하는 것이 ‘성범죄’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개인정보 노출에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피해자 신고센터와 상담소를 운영하고, 특별교육과 캠페인도 실시한다.
가해·피해 학생 현황도 전수조사하고 있다. 신고된 건은 경찰이 나서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적발 시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일선 교육청과 학교는 학생들에게 개인정보 유출 주의를 당부하고 관련 교육도 강화할 계획이다.
인천교육청의 경우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 신고 센터를 설치·운영해 실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대처 방법을 안내하고 법률·심리 상담 등을 지원한다. 부산교육청은 부산여성폭력방지센터와 연계해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피해 대응을 위한 교육 강사를 일선 학교에 긴급 투입했다.
전북교육청은 29~30일에 도내 각급 학교 교장, 교감, 담당 교사 2500명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이해 및 예방방안’에 대한 집중교육을 하기로 했다. 또 강원교육청은 생활지도교사 640명과 각 시군 교육지원청 담당 장학사 등을 대상으로 학생 피해 예방 대책 등을 교육했다.
◆정치권도 한목소리 = 범죄가 확산되는데 정작 ‘딥페이크 방지법’들이 국회에 장기 계류돼 있어 논란이다.
국회 등에 따르면 AI 기술이 통제 수준을 넘어서 고의로 악용되는 우려를 막기 위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 등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법안 대부분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된 것들이다.
법안들이 지난 국회에서 통과됐다면 딥페이크 범죄를 상당부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나오는 지점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한동훈 대표 주재로 29일 긴급 현안 간담회를 연다. 이날 참석자들은 딥페이크 음란물 확산 실태와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딥페이크 근절을 위한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나 특위 구성을 통해 종합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 계류돼 있는 관련법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점망이다.
◆‘위장수사 확대’ 필요성 대두 = 한편 경찰 안팎에서는 딥페이크 등 디지털성범죄 급증으로 ‘위장수사 확대’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현재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성범죄에 대해선 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 근거해 경찰이 위장수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 성 착취물 등에 대해선 법적 근거가 없어 위장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로까지 확대할 경우 딥페이크 허위 영상물의 유통경로로 활용되는 텔레그램의 폐쇄성과 더불어 피해자를 성인과 미성년자로 구분하기 어려운 수사상 한계까지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지난 7월 신분 위장 등을 통해 경찰이 성인 대상 디지털성범죄를 수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