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을 위해 국회·정부 나서야
‘돌봄’이 시대의 화두다. 저출생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며 ‘돌봄’은 가정을 넘어 정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반영하듯 여야의 제22대 총선 10대 공약에 ‘아이돌봄서비스’ ‘어르신 간병서비스 개선’ 등 돌봄 영역에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아이와 노인 등 ‘돌봄을 받아야 하는 대상’을 위한 정책이 점차 강화되는 것과 달리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대상’을 위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다.
‘가족 돌보는 아동·청소년’ 통계조차 없어
실제 우리 곁에는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질병 장애 등을 앓고 있는 가족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이 많다. 어린 나이부터 돌봄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지만 공식적으로 이와 같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이 몇이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난 20일 가족돌봄아동 중 한 사람으로서 김 모(14세) 옥 모(18세) 아동이 떨리는 발걸음으로 국회를 찾았다. 임기만료로 제21대 국회를 넘지 못한 채 폐기돼 제22대 국회에 재발의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둘은 가족돌봄아동 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함께 본인과 같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게 법 제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두 사람은 방법도 모른 채 보호자를 간병하거나 공과금을 대신 내왔던 일, 초등학교 때부터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봤던 일들을 전하며 오랜 기간 홀로 견뎌야 했던 현실적 어려움과 심리적 부담감을 호소했다.
김 모 아동처럼 초등학생 때부터 가족돌봄을 하는 아동이 많지만 현재 정부 지원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가 ‘가족돌봄청년지원사업’으로 일상돌봄서비스를 포함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13세 이상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다. 그마저도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발굴 및 지원 실적은 저조하다. 몇몇 지자체가 제정한 가족돌봄아동 등 지원 조례 대상 연령도 조례마다 상이하고 13세 미만 가족돌봄아동이 제외된 조례도 많다.
국가와 사회가 돌봄 무게 함께 책임져야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을 위한 법적 근거조차 없다. 지난 2021년 투병 중인 아버지를 혼자 돌보다 숨지게 한 ‘간병살인’으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하지만 약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질적인 정책 변화는 미비하다.
용기를 내 기자회견장에 선 아동들은 가족돌봄아동들에게도 돌봄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가족과 함께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가 먼저 나서서 본인과 같은 상황에 놓인 아동들을 지켜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이제 모든 형태의 ‘돌봄’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임을 인식하고 홀로 돌봄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발 벗고 나설 때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해 실질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인이 가족돌봄아동인지 알지 못한 채 묵묵히 돌봄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이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 돌봄의 무게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
기자회견장에서 용기 내어 목소리 낸 당사자의 의견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 않도록 하루 빨리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지원법안이 제정되길 기대해본다.
초록우산
아동옹호본부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