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주담대 줄이기 총력전, 더 불안한 기업대출로 쏠리나
금리인상+총량제한 총동원
조달금리 하락, 이자이익 증가
“금융시장 질서 왜곡 가능성”
은행권이 위험수위에 이른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줄이기에 총력전으로 나섰다. 금리인상은 물론이고 대출 총량도 제한해 주담대 증가세를 꺾겠다는 의도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뤄지는 이번 조치는 향후 예금금리 급락과 기업대출 급증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자칫 금융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권에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은행들이 금리를 올려서 쉽게 대응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주요 시중은행이 대출 총량제한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고 있다.
주담대 시장에서 가장 큰 손인 KB국민은행은 29일부터 만기를 30년으로 단축하는 조치를 내놨다. 기존 최장 50년까지 만기가 가능했던 데서 20년이나 단축하면 그만큼 대출한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도 없애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다음달 2일부터 다주택자의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를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제한한다. 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방식의 ‘갭투자’ 용도로 활용되는 것으로 의심받는 전세자금대출도 아예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시중은행도 9월부터 시행하는 금융당국의 2단계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을 앞두고 다양한 방식의 총량제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주요 시중은행은 지난달 이후 적게는 두차례 많게는 일곱차례에 걸쳐 주담대 금리 하단을 최대 1.27%p 이상했다. 이에 따라 주담대 금리 하단이 한 때 2.87%까지 하락했던 데서 다시 3%대 후반까지 올랐다.
은행연합회는 26일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9월 시행예정인 스트레스DSR 2단계에 적극 협조하겠다”면서 “금리 등 가격중심 대응보다 은행별 대출심사를 체계화하고 대출한도를 탄력적으로 적용하겠다”고 결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은행권의 가격(금리)과 물량(대출총량) 공급을 동시에 줄이는 주담대 감소대책이 여러 부정적 풍선효과로 나타날 우려다. 당장 은행들은 주담대를 줄이기 위해 예금을 더 확보할 이유가 없어져 수신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다. 최근 미국발 금리인하 기대감으로 국채와 은행채 등 시장금리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예금금리가 더 빠르게 내릴 수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예금은행 수신금리는 지난해 말 3.83%에서 올해 6월 3.50%로 하락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은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3%대 초반까지 내리는 등 기준금리(3.50%)보다 크게 낮은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돈 쓸 데(대출)를 감안해서 예금이나 채권발행 등 자금조달 계획을 짠다”며 “주담대 총량을 급격히 줄이면 예금이자를 낮추거나 채권발행을 줄이기 때문에 결국 조달금리는 더 빠르게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대출금리와 격차가 더 벌어져 이자이익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안그래도 이자장사라는 비판을 받는 데 지금과 같이 예대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하반기 이후 더 큰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주담대 축소는 중소기업 등 기업대출 밀어내기로 풍선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은행은 확보한 자금이 가계대출에서 막히면 기업대출로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자금조달 원천이 다양하고 여유가 있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은 대출을 더 늘릴 수 있다. 실제로 최근 3년치 추이를 보면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순증은 반비례를 보이기도 한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7월 기준 당해 연도 누적 대출 순증규모는 주담대가 12조2000억 늘어날 때 중소기업 대출은 51조5000억원 증가했다. 이듬해 같은 기간 주담대 증가세가 21조9000억원까지 늘면서 중기 대출(28조1000억원)은 감소했다. 올해도 7월까지 주담대 순증이 32조1000억원에 달하면서 중기 대출(31조7000억원)은 상대적으로 증가세가 주춤한 양상이다.
문제는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주담대 등 가계대출에 비해 부실화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연체율은 줄곧 0.4% 수준이지만, 기업대출의 경우 최대 0.7%까지 상승하는 등 부실 가능성이 더 높다. 금융감독원이 28일 발표한 '은행권 2분기 부실채권 현황'에서도 중소기업 부실채권은 0.77%로 전체 부실채권 규모(0.53%)에 비해 높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급증하는 주담대 증가 추세를 꺾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당국이 인위적으로 개입해 가격과 총량을 조정하면 금융시장 전반에 연쇄적인 왜곡이 일어나 향후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27일 오후 서울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왜 우리가 지금 기준금리 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