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 가공식품으로 수익창출 꿈꿔

2024-08-28 13:00:18 게재

CCTV·구판장 설치로 변화 시작

상괭이 마을 브랜드 사업 구상

섬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영토적·지정학적 가치를 넘어 경제적 가치, 환경적 가치까지 주목받고 있다.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 같은 다양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소멸 위기는 육지보다 더 심각하다. 불편한 생활여건과 줄어드는 일자리, 지리적 고립성 때문에 주민들이 섬을 떠나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더 이상 섬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안전부가 한국섬진흥원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섬 지역 특성화사업’은 어쩌면 작은 희망일 수 있다. 특히 개발 중심의 토목사업이 대부분인 기존 정책과 달리 주민들 스스로 섬 마을이 지속가능하도록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의미를 둔 사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에 내일신문은 모두 5회에 걸쳐 섬 특성화사업과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인 권역별 대표 섬들을 통해 지속가능한 섬 마을의 가능성을 점검한다. <편집자주>

‘홍합 가득한 행복터전, 황덕도’ 경남 거제시 하청면 황덕도 주민들이 섬 지역 특성화사업을 추진하며 내건 기치다. 이곳은 23.8㏊로 축구장(0.7㏊) 34배 면적의 아주 작은 섬이다. 육지를 기준으로 보면 섬 안의 섬이다. 칠천대교로 이어진 칠천도에서 황덕교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이 작은 섬이 섬 특성화사업을 계기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경남 거제시 하청면 황덕도 전경. 칠천도 쪽에서 드론으로 촬영했다. 가운데 보이는 다리가 2015년 개통한 황덕교다. 사진 한국섬진흥원 제공

◆CCTV, 작은 섬마을엔 선물 = 황덕도의 주민등록상 주민은 2020년부터 40~41명을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실제 섬에 거주하는 인구는 23세대 28명 뿐이다. 이 가운데 20세대 정도가 1인 노인가구다. 2015년 칠천도와 연도교로 연결되면서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해졌지만 교행이 어려운 1차선 넓이고 마을안길도 마찬가지다. 마을엔 주차장도 없다. 마을안길은 서류상으로는 지번도 없는 공유수면이라 정비나 확장이 어렵다.

이처럼 상황이 열악하지만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했다. 주민들 스스로 ‘인구수가 적어 괄시받는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2021년 섬 지역 특성화사업에 선정되면서 이 작은 섬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사업을 신청했지만 두번 떨어지고 세번만에 선정됐다. 1단계 때 주민조직인 아름다운협동조합을 결성했고, 2023년 본격적으로 2단계 사업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가장 먼저 황덕교와 마을 안길에 CCTV 7대를 설치했다. 다리가 생기고 9년이 지날 동안 거제시에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설치하지 못하던 CCTV를 섬 특성화사업 예산으로 설치할 수 있었다. 한동안 낚시꾼들이 어선에서 생선을 훔쳐가거나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일이 많았는데 CCTV 설치 이후에는 싹 사라졌다. 차를 아무렇게나 주차해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김영수 아름다운협동조합 사무국장은 “CCTV 7대를 설치했을 뿐인데 마을 전체가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마을구판장, 소득사업 마중물 = 특성화사업 2단계에서 얻은 성과 중 또 다른 하나는 황덕마켓이라 이름 붙이 마을구판장이다. 황덕교 개통 이후 낚시꾼들이 많게는 하루 100명 이상씩 드나드는데 정작 마을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승용차가 100여대씩 들어오는 날에는 교통이 마비되기 일쑤고 버리고 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처음에는 다리 개통을 반겼던 주민들 사이에서 외부인 통행을 통제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마을 입구에 낚시용품과 간단한 식음료를 파는 구판장을 지으면서 낚시꾼들을 상대로 한 수익사업이 가능해졌다. 올해 4월 문을 열면서 마을 수익도 생겼다. 마을 주민들도 낚시꾼들을 불청객이 아닌 손님으로 보기 시작했다.

황덕마켓은 앞으로 지역에서 생산한 수산물을 판매할 공간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수익사업을 위한 기본시설인 셈이다. 이 밖에도 그동안 주민들의 숙원이었던 마을회관 리모델링, 마을안길 정비 등도 함께 진행 중이다. 낡은 마을회관 1·2층의 도배·장판을 새로 하고 창호와 문을 교체한다. 2층에 다목적실을 만들어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비가 오면 물이 새던 옥상 누수도 이번 공사로 해결된다. 마을안길인 황덕교~지부리선착장 85m 구간을 확장해 차량 교행이 가능하도록 하고, 낚시 성수기 임시주차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정재 이장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제 일로 여기고 함께 해 줘 고맙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들 사이에 결속력이 더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첫 마을공동사업장 황덕마켓 앞에 선 주민들. 섬 지역 특성화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만 새마을지도자, 이정재 이장, 김영수 황덕도아름다운협동조합 사무국장. 거제 김신일 기자

◆어민들 양식한 홍합 상품화 도전 = 황덕도는 올해 특성화사업 3단계 승급에도 성공했다. 내년부터는 지역 특산물인 홍합 상품화를 위한 공동작업장 ‘홍합회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황덕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을 위한 민박시설 설치와 마을 경관개선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홍합회관에서는 홍합말랭이와 홍합분말 등을 생산해 황덕마켓 등을 통해 판매한다.

또 홍합을 활용한 음식을 개발해 판매하는 마을식당도 운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4단계에는 이를 사업을 더 확산시켜 홍합말랭이를 활용한 퓨전요리 홍합야채빵 바로요리세트(밀키트) 반려견수제간식 등 파생상품 개발에도 나선다. 김상만 새마을지도자는 “우리가 늘 먹던 홍합이지만 이를 활용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며 “섬 특성화사업을 계기로 홍합의 활용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4단계에선 또 섬 일주 둘레길을 정비해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생각이다.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황덕도 주민들은 토종 돌고래 상괭이를 활용한 마을 브랜드 사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황덕도 앞바다는 상괭이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다. 섬 둘레길을 상괭이와 연결해 조성하는 방안, 산 정상에 상괭이 관람시설을 설치하는 방안, 그리고 더 나아가 상괭이를 섬의 대표 이미지로 만드는 방안 등을 논의해볼 생각이다.

김영수 사무국장은 “마을공동체의 소득이 안정되고 홍합과 상괭이로 대표되는 관광 명소로 발전시켜 우리 마을이 지속가능하도록 만들고싶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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