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제작 단계부터 집중 단속
경찰, 음란물 자동 생성 텔레그램 프로그램 내사 … 정부, 전부처 대응체제 추진
여성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영상을 제작해 유포하는 ‘딥페이크(Deepfake) 성범죄’에 대한 대대적 단속에 나선 경찰이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딥페이크 피해가 여성이나 아동·청소년 등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번지자 정부도 다음 달 중 교육부, 여성가족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고 총력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인천 남동경찰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등학생인 10대 A군을 수사하고 있다.
A군은 지난달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딥페이크’ 기술로 고등학교 여교사 2명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앞서 피해 여교사 2명의 진정서를 접수하고 수사를 벌여 성범죄물 제작·유포자로 A군을 특정했다. 경찰은 A군이 주로 텔레그램을 통해 성범죄물을 유포한 것으로 보고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구체적인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첩보 발굴” = 경찰은 이같은 개별 피해사례뿐 아니라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유통 플랫폼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날 기준 딥페이크 음란물을 자동 생성하는 텔레그램 프로그램(봇) 8개를 입건 전 조사(내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대상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 봇을 운영하는 이들을 추적하는 한편 ‘겹지인방’ 등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해 합성물을 만든 뒤 유포하는 텔레그램 단체방에 대해서도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첩보를 발굴하고 피해사례 확인 시 즉각 수사에 착수해 신속 검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내에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딥페이크 성범죄 등 허위영상물 집중 대응에 나섰다.
◆피해자 급증 가능성 높아 = 경찰 단속에 속도가 붙으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피해사례들이 속속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타인의 일상 사진이나 일반 영상물을 성적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합성·편집한 것을 의미하는 ‘딥페이크’로 인한 피해 지원건수는 2018년 69건에서 올해(8월 25일 기준) 781건으로 11배 넘게 급증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가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설치된 2018년 4월 이후 올해 8월 25일까지 ‘딥페이크’ 피해 지원에 나선 건수다.
이러한 추세라면 올해 딥페이크 피해자는 1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디성센터는 삭제지원 특화 시스템인 ‘DNA 시스템’을 가동해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텔레그램 등 해외 플랫폼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제작·유포자에 대해 강력하고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청소년들이 최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기간 디성센터에 딥페이크 피해 지원을 요청한 781명 가운데 36.9%(288명)는 10대 이하였다. 피해 지원을 요청한 미성년자는 2022년 64명에서 2024년(8월 25일 기준) 288명으로 2년 만에 4.5배가 됐다. 같은 기간 전체 피해 지원 요청자가 212명에서 781명으로 3.7배 증가한 속도보다 더 가파르다.
허위 영상물 등 범죄 혐의로 입건된 전체 피의자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65.4%, 2022년 61.2%에서 2023년 75.8%로 커졌다. 올해 1~7월은 73.6%로 역시 높은 수준이다.
◆가해·피해 중심에 선 학교 =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교가 딥페이크 성범죄의 주무대로 등장했다.
실제로 교육부가 17개 시도교육청을 통해 파악한 결과 올해 1월부터 전날까지 학생·교원 딥페이크 피해 건수가 총 196건으로 집계됐다
학생 피해가 186건, 교원 피해가 10건이었다. 학생 피해 건수를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 8건, 중학교 100건, 고등학교 78건이다. 교원 피해는 초등학교 0건, 중학교 9건, 고등학교 1건으로 각각 집계됐다.
피해 건수 가운데 179건은 수사 당국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교육계에서는 경찰 단속으로 이보다 많은 피·가해 사례가 드러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학교 특성 상 피해 사실을 알리길 꺼리는 경우가 있고, 다른 기관을 통해 피해 사실을 신고했을 경우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원노조들은 전국적으로 피해자가 수 없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딥페이크 제작·유포는 학교 차원의 예방교육으로 해결될 범위를 넘어섰다며 수사와 처벌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성명을 내고 “청소년의 성범죄를 더 이상 ‘단순 호기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일부 청소년은 디지털 성범죄 결과물을 경제적 가치로 교환하고 있다”며 “학교가 아닌 국가 차원의 신고 시스템과 수사 전담팀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교육부는 학생·교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학교 딥페이크 대응 긴급 TF’(가칭)를 구성해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TF는 매주 한 번씩 학교 딥페이크 사안을 조사하고, 경찰청·여성가족부·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공조·협력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시도 교육청과 비상 연락망을 운영하는 등 현장 소통을 총괄한다.
TF는 이와 함께 학생·교원 피해 사안 처리, 학생·교원 심리 지원도 맡는다.
학교폭력과 관련된 딥페이크의 경우 학교폭력 사안 처리를 지원하고, 학생 상담 프로그램인 ‘위(Wee) 클래스’, ‘위(Wee) 센터’를 통해 학생 상담·치유를 지원한다. 피해로 충격이 큰 위기 학생에게는 외부 전문기관을 연계해주고, 정신건강 관련 진료·치료비를 최대 300만원까지 지원한다.
피해 학생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가해자·피해자 분리에도 나선다.
직·간접 피해를 본 교원의 경우 심리 상담과 치료, 법률 지원 등 보호 방안을 마련한다.
◆‘서울대 N번방’ 공범에 징역 5년 = 한편 서울대 졸업생들이 동문 여성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이른바 ‘서울대 딥페이크’(서울대 N번방) 사건의 공범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유랑 부장판사는 28일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편집·반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 모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의 정보통신망을 통한 공개·고지, 5년간의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시설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허위 영상물 내용은 일반인 입장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역겨운 내용”이라며 “익명성과 편의성을 악용해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도구화하며 피해자의 인격을 몰살해 엄벌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록을 남기기 위해 SNS에 게시하는 현대인의 일상적 행위가 범죄 행위의 대상으로 조작되기에 피해자가 느낄 성적 굴욕감은 헤아릴 수 없다”고 질타했다.
박씨는 2020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상습적으로 허위 영상물 400여개를 제작하고 1700여개를 유포한 혐의 등으로 지난 5월 기소됐다. 주범 40대 박 모씨와 나머지 공범들에 대한 재판도 진행되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