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끓는 지구, 안일한 인류

2024-08-30 13:00:06 게재

지구가 온난화를 넘어 끓기 시작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경고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열대야가 한달 넘게 계속돼 기록을 경신했고 찜통더위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한반도의 기상은 온대를 벗어나 점점 더 아열대 기후 특성을 보이고 있고 기온상승에 따른 작물과 어류의 서식지 북상도 계속된다.

극한적인 폭염과 호우의 강도와 빈도가 동시에 증가하는 이상현상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상측정이 시작된 이후의 각종 기록들이 연이어 경신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더 이상 기상이변으로 치부하면 안된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를 담은 이변이라는 표현은 이제 접어야 한다. 반복되는 이변이 점점 더 나빠질 것이라면 극한적인 기상의 일상화를 새로운 정상(new normal)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극한기상의 뿌리에는 본격화되는 기후변화가 작동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초 산업화 이전과 비교한 기온이 처음으로 일평균 1.5℃를 넘어선 이후에 수직적으로 올라가면서 이제 월평균 기온도 1.7℃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가 가장 더운 8월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앞으로 올 8월 중에서는 가장 시원한 달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매년 갱신되고 있는 연평균 기온상승도 이미 1.5℃를 넘어섰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에 내재된 쌍둥이 부조리

인간의 체온이 올라가면 몸살을 앓듯이 기온이 올라가면 지구도 몸살을 앓게 된다. 지구가 견딜 수 있는 기온상승의 임계점으로 파리 기후협약에서 합의된 1.5℃를 이미 넘어섰는데도 왜 인류의 대응은 전혀 변하지 않고 갈지(之)자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일까? 파리협약에도 불구하고 왜 온실가스 배출은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2℃를 넘어 3℃, 4℃, 6℃까지 올라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유엔에서 경고한 대로 인류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 아닌가?

이런 의문들에 답을 줘야 할 국제적 합의는 솜방망이에 그치면서 오히려 무대응을 가려주는 면피용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기후변화 대응에 내재된 쌍둥이 부조리가 작동한다.

첫째는 책임과 피해의 이율배반이다. 기후변화에 책임을 져야 할 계층과 국가보다 책임이 없는 계층과 국가의 피해가 훨씬 막심하다. 피해가 큰 계층과 국가들은 대응능력도 취약한데 책임이 크고 능력이 있는 계층과 국가들은 취약층에 대한 피해 지원에 인색하다.

둘째는 기후변화의 악화에 더 크고 오랜 영향을 받을 세대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발언권은 중장기적 문제에 덜 민감한 기성세대에 비해 크게 제약되어 있다. 더 이상 기온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에서 탈피하는 에너지 전환이 필수인데 늘어나는 비용 부담에 대한 합의는 쌍둥이 부조리로 요원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화석연료 퇴출을 전제한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의 균형을 이루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이는 사회적 국제적인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합의를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위기의식 결여다. 오고 있는, 아니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을 가능성이 큰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위기다.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시급성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공유·확산하는 것이 해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변화하는 개인의 인식이 모여서 전체의 변화를 촉발하는 임계질량(critical mass)을 만들어내야 정치인들의 계산이 바뀌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기초한 산업 문명의 패러다임도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하게 바뀌게 될 것이다.

재도약 계기로 삼는 인식 전환 절실

이런 여정에 기후변화에 책임이 크면서 동시에 취약하기도 한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차세계대전 후에 유일하게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제사회의 모범국가라는 칭송에 걸맞지 않게 우리는 기후악당의 오명을 받고 있다. 또한 우리는 산악지형임에도 대부분의 거주지가 낮은 해안과 강변에 집중되어 있어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집중호우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기후위기를 재도약의 계기로 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산업계와 정치권의 인식을 바꾸는데 시민사회와 미래세대가 합심해서 나서야 한다.

김원수

경희대 미래문명원장

전 유엔 사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