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달과 별의 대통령
대통령 공식 발언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국내외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언급할 때마다 기자들이 해당 분야 전문가나 정치평론가들에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부지런히 묻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발언과 관련해 정치평론가들의 해설을 청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뜬금없다”였다.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반국가세력’의 뜻이 뭘까 물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워낙 뜬금없어서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정치평론가도 비슷했다. 간첩을 뜻하는 거라면 잡으라고 하면 될 텐데 굳이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국 ‘반국가세력’의 속뜻은 야권이었을까? 현실에 발붙이지 않고 맥락 없는 대통령의 한마디는 이렇게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대통령 연설문을 연구하는 한 연구자는 이런 말도 했다. “8.15 경축사에선 전통적으로 일본이나 대북관계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때문에 대통령의 많은 연설문 중에서도 주요하게 취급된다. 그런데 과연 윤 대통령 연설문을 다른 대통령 연설문과 같은 선상에 놓고 분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 이야기는 한줄 없이 반국가세력 이야기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정치권의 대통령에 대한 논평을 보면 윤 대통령은 영락없는 달과 별의 대통령이다. 여당의 전략기획부총장을 맡고 있는 신지호 전 의원은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응급실 상황이 관리가능한 상황”이라고 바라본 대통령 주변 참모들에 대해 “달나라 수준의 상황인식”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했다.
야권 정당 대표 중 유일하게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현장에서 경축사를 들은 후 “별세계에 살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소감을 내놨다. 허 대표는 의료개혁 관련한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선 “딴나라 대통령”이라고 논평했다.
의료현장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을 지목하며 질문을 한 기자에게 “(의료) 현장을 가보라. 답은 현장에 있고 디테일에 있다”라는 대통령을 보며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 혼자 다른 나라에 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고 혀를 찼다.
윤 대통령이 살고 있는 세상은 ‘비상응급의료체계가 원활히 가동되는’ 세상인지 몰라도 우리 국민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이번 추석에는 절대 아프면 안된다더라. 건강하시라”는 안부카톡이 도는 세상이다. 견디다 못한 대학병원들이 응급의료센터 운영을 제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공지를 내고, 권역응급의료센터에 근무하는 의사 숫자가 1년 만에 43% 감소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세상이다. 국민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저멀리 달과 별에 있는 대통령이 아니라.
김형선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