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국고채 발행 소식에 채권 금리 연일 상승
작년과 올해 세수 결손 후폭풍 … 금리인하 지연 전망도 영향
한전채·은행채 등 초우량물 발행↑… 회사채 시장 경색 우려
"한은 11월 금리인하 가능성" 나와 … 금리 상승 리스크 주의
정부가 내년에 사상 최대 처음으로 200조원이 넘는 국고채 발행 계획을 발표한 이후 시장금리가 연일 상승 중이다. 전문가들 예상치보다 급증한 국고채 발행 물량 계획이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장기물을 중심으로 금리 상승압력이 커지는 모습이다.
채권전문가들은 작년과 올해 세수결손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으로 때워온 후폭풍으로 해석했다.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시점이 예상보다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금리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국고채 발행 전년대비 68% 증가 =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는 장중 내내 상승세를 나타내며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3.6bp(1bp=0.01%p) 오른 연 2.989%에 마감했다. 10년물 금리는 연 3.121%로 3.3bp 상승했다. 10년물 금리는 지난 7월 26일(3.108%) 이후 한 달여 만에 3.1%대로 올랐다. 5년물과 2년물은 각각 3.9bp, 2.4bp 상승해 연 3.049%, 연 3.091%에 마감했다. 20년물은 연 3.118%로 3.4bp 올랐다. 30년물과 50년물은 각각 2.4bp, 2.3bp 상승해 연 3.002%, 연 2.914%를 기록했다.
정부가 지난달 27일 ‘2025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밝힌 역대 최대 규모의 총 201조3000억원의 국고채 발행 계획 충격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날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974%에서 연 3.073%로 하루 만에 10bp 가량 급등하는 등 들썩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올해 본예산(158조4000억원)보다 42조8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순발행이 83조7000억원으로, 올해보다 68%가량(33조9000억원) 늘었다. 월평균으로 계산하면 3조원 이상 증가하며, 국고 5~10년물은 최대 42조원 물량 증가가 우려된다.
◆작년과 올해 세수결손, 공자기금으로 때워 = 채권전문가들은 국고채 발행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이유로 코로나 이후 발행된 국고채 중 상당물량의 만기 도래 영향도 있지만 작년과 올해 정부의 세수결손을 공자기금으로 때워온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작년과 올해 세수 결손 대응책으로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여유분→공자기금→일반회계’로의 전입 방식을 활용해 돈을 당겨왔다. 팬데믹 이후 공자기금에서 정부가 빌린 규모는 연평균 81조원으로 2019년 34조원의 두 배 이상이다. 그런데 내년에는 이렇게 공자기금으로 당겨올 재원이 마땅치 않다 보니, 국채 순증 발행분으로 공자기금을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공자기금에서 일반회계에 전입되는 규모를 일컫는 ‘적자국채’ 규모는 내년 86조7000억원인데, 이는 대부분 순발행 분(83조7000억원)에서 충당된다. 올해 예산의 적자국채 규모 81조원 중 순발행 규모가 50조원 가량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된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대규모 세수 결손 등으로 공자기금을 갖다 쓴 결과 재원이 부족해졌고, 이를 국고채 발행으로 만회하겠다는 뜻”이라며 “아니면 향후 공자기금의 적극 활용을 목적으로 기금 확충을 위한 국고채 발행 확대일 가능성도 있다”고 해석했다. 세수입 제외 정부 지출 재원 마련 방법은 한은 일시 차입, 재정증권 발행, 공자기금 활용 등이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한은 일시 차입 한도는 50조원이고 일시차입금 평균잔액이 재정증권 잔액을 상회할 수 없게 됐다. 가장 손쉬웠던 일시 차입 제도 활용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보다 빠른 정부 지출 재원 마련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
내년 상반기 발행액은 월 20조원 내외로 추정되며 정부의 세수결손 대응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 누증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단기적으로 외국인 선물매도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내년 중 법인세 세입 증가 등을 감안해 국채 총 발행량이 급격한 증가 수순을 밟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장 예상과는 달리 이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의 발행량이 발표되어 시장에서는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라며 “현재 금리인하를 약 2회 넘게 반영하고 있는 국고채 금리의 레벨 적정성까지 고려하면서 시장 금리의 충격은 더욱 컸다”고 평가했다.
◆한전채 또다시 채권시장 블랙홀 되나 = 문제는 발행 물량이 급증하면서 조그만 변동성이라도 발생하면 금리가 튈 압력이 커졌다는 점이다. 국채 등 우량채권 발행이 늘어난 여파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을 가능성도 있다.
시장 예상과는 달리 국채 총 발행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고채 금리 상승세가 부담으로 작용한 가운데 덩달아 초우량물 발행량이 증가하고 금리도 상승하는 중이다.
김명실 연구원에 따르면 연말까지 도래하는 공사채 만기도래 규모는 약 31조원에 달한다. 이 중 10조원 정도가 한전채 물량에 속하는데, 한전채는 차환을 위해 6월부터 꾸준히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같은 기간 은행채 만기물량도 약 75조4000억원에 달한다. 김 연구원은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이 많은 만큼 공사채, 은행채의 발행물량은 점진적으로 확대될 공산이 높다”며 “이는 일반 회사채권의 수급까지 가져가는 블랙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은 금리인하 11월로 지연될까 = 채권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시점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시장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시점이 예상보다 늦게 11월로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이 또한 금리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올해 경제 전망치(2.5%→2.4%)를 내렸지만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상회하고 경기와 물가를 보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무방하지만 절실히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기준금리 인하시기를 기존 전망이었던 10월에서 한 달 늦춰진 11월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10월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하다”면서도 “다만 금융안정을 논거로 (인하 시점이) 11월로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가격, 이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 등 금융 안정에 대해 유의해야 하는 시기라고 언급했다”며 “8월 금통위 이후 신성환 위원과 이창용 총재의 매파적인 코멘트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시기가 뒤로 지연될 수 있다는 리스크 불거졌다”고 평가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9월 금리는 8월 확인한 수준보다는 약간은 높은 범위로 예상한다”며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수세가 약해졌고, 최근 일별로는 대량 매도도 출회시키고 있으므로 금리의 상승 리스크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