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안정 목표 2% 달성’ 강조…금리인하 압박용?
당분간 물가 2% 초반대 전망 … 금리인하 여건 관심
집값 상승세와 가계부채 변수 … 독립성 훼손 논란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년여 만에 정점(6.3%)에서 물가안정 목표치인 2.0%로 내려왔다. 물가 수준만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의 최소여건은 조성된 셈이다.
정부도 어느 때보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기록, 물가안정목표에 이르렀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금리인하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부담이 다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간 고물가를 거친 탓에 물가 수준 자체가 높다는 점도 변수다. 추석을 앞두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일부 채소·과일 가격 등 장바구니 부담이 여전히 무거운 이유다.
◆물가상승률 안정세? = 3일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2.6%)보다 0.6%포인트(p) 하락한 2.0%를 기록했다. 4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햇과일 출시 등으로 과일류 가격이 하락했고 석유류 물가는 국제유가 하락과 작년 가격상승 기저효과 등으로 상승폭이 축소된 영향이다.
통계수치로만 보면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정부와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권으로 진입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7월(6.3%)에 정점을 찍었다가 2년여만에 목표 지점(2.0%)에 안착했다.
물가 안정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향후에도 기상이변, 국제유가 불안 등 추가 충격이 없다면 2% 초반의 물가 안정 흐름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물가 안정세에 따라 통화정책에 관심이 쏠린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동결했다. 지난해 2월 이후 13차례 연속이다. 대통령실, 정치권에선 내수 부진 문제 등을 고려하면 아쉬운 결정이란 평가도 나왔다.
◆금리인하 압박하는 정부 = 정부 관계자들은 잇따라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언급을 쏟아냈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우리 물가가 드디어 2% 정도로 전월에 비해 안정되기 시작했다”면서 “금리를 조금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조금 더 생기지 않았나”라고 밝혔다.
김범석 기재부 1차관도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에 도달했고, 향후 추가 충격이 없다면 물가 상승률은 2% 초반으로 안정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대통령실도 지난달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공개발언을 내놔 논란이 됐다. 지난 8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기준금리는 물가·집값·경기 등 다양한 정책 변수가 상충하는 문제인데, 이미 가계부채 급증으로 통화정책의 유연성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앙은행에 대한 개입성 발언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현행 법령은 통화금리 결정의 독립성과 정부의 불개입 원칙을 규정하고 있어, 이를 훼손한게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기준금리 결정은 한은 금통위의 독자적 권한이다.
한은법 제3조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정치적 목표 때문에 통화정책이 왜곡될 수 있어서다.
다만 한은의 금리인하 수용 가능성은 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주요 선진국에 비해 물가가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며 “큰 공급 충격이 없다면 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안정된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생각할 때”라고 평가했다.
◆아직 변수는 많아 = 다만 최근 집값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 등이 남은 변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만 보면 금리 인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면서 “이제 금융 안정 등을 봐서 어떻게 움직일지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높다는 점도 부담이다.
체감물가 지표인 생활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1%로 7월(3.0%) 대비 상승폭이 줄었다. 1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추석 물가는 높다. 먼저 채소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장마·태풍 등 영향으로 인해 생육이 부진해 출하량이 준 탓이다. 배추가격 오름세도 심상찮다. 배추 가격은 같은 날 가준 6455원이다. 배춧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5766원)에 비해 11.95% 상승했다. 무 가격은 1개에 3718원으로 지난해(2680원)보다 38.7% 뛰었다. 과일 가격 부담도 여전하다. 지난달에만 각각 120%, 17% 수준 올랐다. 햇과일이 본격적으로 유통될 때까진 강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축산물 가격도 안심할 순 없다.
그동안 가격 인상을 억눌러왔던 가공식품 가격도 부담이다. 오뚜기는 이달부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3분 카레·짜장 가격을 2000원에서 2200원으로 올렸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