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매입임대주택, 또 다른 전세사기의 불씨

2024-09-05 13:00:01 게재

올해 상반기 주택시장을 살펴보면 여러 시사점이 있는데 주목할 것은 아파트 전세가격 강세다. 이를 놓고 빌라기피 현상이라는 해석이 있다. 수요자들이 빌라를 기피하면서 전세수요가 비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전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장을 나가보고 데이터들을 살펴본 결과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상반기 주택시장은 전세자금 대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전세가격이 상승했다. 과거 이명박정부 때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당시 주택가격은 제자리인데 전세가격만 올랐다. 그렇다면 가격을 상승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상승장에서 차익을 실현한 주택매도자금이 갈아타기를 하지 않고 전세로 전환됐을 가능성이 크다. 매수 수요자들은 주택시장에 대한 전망이 어두울 경우 또는 오를 것 같지 않거나 하락할 것 같으면 관망한다. 주택을 사는 것도, 사지 않는 것도 모두 투기적 선택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 같으면 전세가와 집값이 비슷해도 전세를 선택한다. 최소한 원금은 지킨다는 믿음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전세가가 높아졌던 이유는 집값 하락에 대한 믿음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여파로 비아파트 전세매물 없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건설사들로서는 위기감이 들 수밖에 없다. 사활을 걸고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펴 바람을 다시 몰고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매수심리가 위축되면서 전세가 상승하는 것은 점차 가격조정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나 비아파트는 서민들을 위한 좋은 주거지였다. 현재 다세대 수요자들의 선택지는 매수 또는 월세다. 보증보험을 확실하게 가입할 수 있는 전세도 비교적 안전하다. 실제 시장에 나가보면 아직도 비아파트 전세수요는 많다. 오히려 전세매물이 없다. 전세사기 여파다. 매물로 나와야 할 전세주택들이 몽땅 경매시장에 잠겨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반환 청구권만 갖고 비워놓은 집이 적지 않다. 전세 사기 피해자 보호를 위해 경매절차를 강제로 연기해주기도 한다. 이 집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이 안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은 임대인 임차인 HUG가 서로 조금씩 손해를 보면서 정상적 가격으로 회귀하는 시간이다.

경매는 일반 매매보다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해관계인들에게 통지하고 배당신고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너무 많은 물량으로 인해 소화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결국 다세대 수요자들은 저렴하게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경매시장을 기웃거린다. 비아파트 임대사업자 혜택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보니 임대사업자들도 경매시장 수요자로 뛰어들고 있다. 얼마나 저렴하게 살 것인지가 수익률의 관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무제한 비아파트를 매입해주겠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기존 부실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빌라업자들에게 세금 깎아주고 PF대출을 90%까지 해준다는 정부 계획에 우려가 크다. 세금 깎아 줄 테니 다주택자와 법인들도 다세대주택시장에 오라는 것은 투기를 조장하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서민 주거안정에 역행하는 정책

소형주택시장까지 투기수요를 유입시켜 가격을 부양하고 안 팔리면 정부가 사주겠다고 한다. 정부 돈이 풀린다는데 시장에서는 기대감이 커져 있는 상황이다. 무제한 공공매입임대주택정책은 서민 주거안정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책이다. 또 다른 전세사기가 창궐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감정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