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경제 봉기’ 다시 시작되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2000년대 못지 않은 성장세… 중국 외 국가들 주도”
“다시 ‘신흥시장의 봉기’가 시작됐다(the rest are rising again).” 신흥시장의 붐이 다시 시작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인도와 한국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멕시코 등 신흥시장의 경제가 2000년대 못지않은 성장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기록적인 적자에 의존해 성장을 해온 미국의 경제는 그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15년 동안 미국의 성장을 주도해온 이른바 ‘M7(애플, 아마존, 메타 플랫폼스, 엔비디아,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으로 지칭되는 대형 기술주들의 수익 성장은 내년에 절반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투자자들, 중대변화 감지 못해
미국의 저명 저널리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다시 변방이 봉기하고 있다(the rest are rising again)’라는 칼럼을 통해 신흥시장 경제가 다시 활력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자카리아는 “2000년대에 신흥시장이 들썩였고, 수십억달러가 신흥시장으로 몰렸다”면서 “요즘 신흥시장에서 당시와 유사한 고무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썼다.
자카리아는 이어 “그러나 신흥시장의 붐을 감지하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중대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카리아는 신흥시장의 상승세와 미국의 하락세를 구체적인 수치로 비교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일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비교해 보면 전체 신흥시장의 48%가 미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5년 동안은 신흥시장의 88%가 미국의 일인당 GDP 성장률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신흥시장 붐의 정점이었던 2000년대에 맞먹을 정도의 성장세다.”
자카리아는 2012년 ‘변방의 붕괴(the demise of the rest)’를 예측했었다. 2000년대 신흥시장의 붐은 중국의 가파른 성장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 서방 중앙은행들의 양적 완화정책 등에 힘입은 것이었다. 당시 자카리아는 신흥시장에 우호적인 이런 상황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경제성장이 무뎌지면서 신흥시장은 10년 동안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자카리아는 이제 ‘변방의 봉기(the rise of the rest)’와 ‘미국의 성장둔화’를 예측하고 있다. 신흥국의 경제가 미국보다 훨씬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많은 신흥국들이 미국보다 훨씬 견조한 재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기록적인 적자에 의존한 성장을 해왔다. 미국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반면 신흥시장은 예산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훨씬 낮다. 투자 여력이 더 크고 미래 성장으로 이끌 수 있다. 튀르키예나 아르헨티나 등 과거에 재정 낭비가 심했던 나라들도 이젠 경제적 정통을 지키고 있다.”
중국 주도의 붐 아니다
자카리아는 최근 신흥시장의 성장이 과거처럼 중국경제의 성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신흥시장의 붐은 중국이 아닌 신흥시장 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들여다본 것이다.
자카리아는 “중국은 인구감소부터 막대한 부채에 이르기까지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서 “베이징의 민족주의적 방향 전환과 서방과의 관계 악화는 글로벌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투자자들이 중국에서 철수하고 다른 나라에 공장을 세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카리아는 세계경제는 앞으로 신흥국 의존도가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래 10년은 녹색기술 관련 수출이 아주 강세를 보일 것”이라면서 “녹색기술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구리와 리튬 등 원자재는 주로 신흥국에서 공급한다”고 환기했다.
자카리아의 지적대로 AI 붐으로 인해 한국과 대만 등은 AI 관련 칩의 수출을 늘리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전자부품의 수출을 늘리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데이터 센터를 두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 근접성이 매력적이다.
자카리아는 거듭 신흥시장의 성장세와 미국의 하락세를 비교한다. 그는 “현재 중국을 제외한 신흥시장에서 기업의 수익은 연간 19%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미국 기업은 연간 10% 성장에 그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올해 2분기에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신흥시장(중국 제외) 기업들이 미국 기업보다 훨씬 앞선 수익 예측치를 보였다. 신흥시장에서는 이익 마진이 개선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8개월 동안 정체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신흥시장 경제에 박한 평가를 매기고 있다. 글로벌 주식 투자자들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에 매료돼 있다. 여전히 신흥시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카리아는 “대부분 신흥시장에서 주식 거래량은 20년 만에 최저치에 가깝다”면서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만이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국내 투자 기반이 강력하고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자카리아는 미국경제에 대해 박한 점수를 주고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무책임한 적자국이라는 오명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미국 달러의 기반을 허물고 있다. 최근 몇주 동안 미국 통화는 마침내 하락하기 시작했다. 신흥시장으로의 자본 흐름은 늘고 있다. 신흥시장은 점점 더 매력적인 거래처로 떠오르고 있다. 신흥시장은 빠른 속도로 수익이 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한다면 기록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카리아는 “지난 15년 동안 미국에서는 주로 대형 기술 기업들이 수익 성장을 주도했다”면서 “하지만 ’M7’으로 지칭되는 대형 기술주들의 수익 성장은 내년에 절반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카리아는 신흥국들이 ‘변방의 봉기’를 위해서는 평균 1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엄선된 몇몇 나라들이 ‘변방의 봉기’를 이끌 것”이라면서 “각각의 나라들은 글로벌 무역이나 달러, 경제개혁,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 등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강점을 보여줄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최근까지 많은 논평가들은 신흥시장이 코로나19 충격의 영향으로 연쇄적 위기에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신흥시장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히 낮고 두려움은 높다. 신흥 시장은 대부분의 글로벌 투자자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림자가 깊을수록 신흥시장 귀환은 더 극적으로 보일 것이다.”
버핏의 미국 주식 매각, 우연일까
과연 우연일까?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주식 비중을 줄이고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최근 애플과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보유주식의 상당 부분을 팔아 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애플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은 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주식이다.
FT등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해서웨이는 최근 보유중인 애플 주식의 절반 가량인 약 3억9000만주를 매각했다. 해서웨이는 앞서 1분기(1~3월) 공시 때도 애플 지분 약 1억1500만주를 매각했다고 밝혔다. 버핏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도 팔아치우고 있다. AP통신은 지난달 29일 해서웨이가 최근 한 주 동안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 2500만주 가량을 팔아 치웠다고 보도했다.
버핏은 왜 주식을 팔아 치울까? AP통신은 “버핏이 요즘 미국 주식시장이 과대평가 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신호”라면서 “버핏의 주식매각은 하락국면을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신흥국의 봉기’를 이끌게 될 것이라는 ‘엄선된 몇몇 나라’에 한국도 포함될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블룸버그 보도를 인용해 “한국 경제 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말은 바로 다음날인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통해 그 신빙성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우리나라 7월 산업생산지수가 전달보다 0.4% 감소해 3개월 연속 감소 추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경제문제에서 만큼은 통계청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 한국경제가 ‘신흥국의 봉기’를 이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