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수출 일본 추월, 김칫국 마실 일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정브리핑에서 “상반기 일본과 수출 격차가 좁혀졌다. 과거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등 국정 주요 책임자도 우리나라 수출이 일본을 추격해 올해 안으로 넘어설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 상반기까지 우리나라 누적 수출액은 3348억달러로 일본(3383억달러)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최근 두나라가 발표한 7월까지 포함해도 여전히 누적 수출액은 100억달러 안팎에서 각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수출과 수입의 차익을 나타내는 상품수지에서는 7월까지 우리나라가 530억달러 흑자지만, 일본은 약 200억달러 이상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교역은 상품만 있는 게 아니다. 서비스와 자본 등의 거래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국가간 교역지표로 경상수지가 더 중요하다. 올해 7월 말까지 누적 경상수지 추이를 보면 한국(472억달러)은 일본(약 1110억달러)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유는 해외 투자소득수지에서 찾을 수 있다. 양국 모두 배당과 이자 등 투자소득수지에서 흑자를 보이지만 규모에서 비교가 안된다. 한국은 7월까지 누적 약 110억달러 흑자지만, 일본은 약 1370억달러 흑자다. 일본의 기업과 가계, 특히 제조업이 해외에 투자한 막대한 자본이 배당과 이자 수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이러한 국제수지 구조를 ‘성숙한 채권국가’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이 이처럼 거대한 자본수지 흑자를 보이는 데는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만든 상품 수출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일본의 대외순금융자산은 3조달러를 넘어 30년 넘게 세계 1위로, 우리나라(약 8600억달러)를 크게 웃돈다. 경제규모와 인구 등 한국과 일본은 많은 지표에서 대략 1대 2.5 정도 비율을 유지하지만 유독 대외자산은 4배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물론 대외순자산이 많다는 점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다. 글로벌 교역여건에 크게 출렁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자국내 제조업 기지가 사라지고, 양질의 일자리도 없어진다는 점에서 마냥 환영할 만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자본의 국내외 균형있는 투자가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일본 추월’을 강조한 것처럼 우리 수출의 약진은 분명 대견하고 자랑할 만한 일이다. 다만 상품 수출에서 조금 앞섰다고 우리가 일본경제를 넘어섰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구조는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어 대단히 취약하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과 소재, 장치산업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일본 이겼다”는 기분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백만호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