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대마에 대한 이해와 오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옛말은 24절기 중 ‘처서’를 의미한다. 처서는 모기 입을 비뚤어지게 하는 절기로만 알고 있지만 실상 여름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말리는 풍습인 ‘음건(陰乾)’과 ‘포쇄(曝曬)’를 하는 날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여름내 입고 덮었던 모시옷 삼베이불이 처서 찬바람에 상할세라 풀먹여 들여놓으시는데 분주하셨던 것을 보고 자랐다.
이렇듯 ‘의식주’ 중 ‘의’가 맨 먼저 올 만큼 선인들에게 옷은 중요한 것이었다. 옷의 기원이 언제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옷 만드는 도구가 남아있어 신석기시대인 1만년 전부터 실과 옷감을 잣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소재의 합성섬유가 아닌 견 모 면 마와 같은 소재를 천연섬유라 한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만든 견(Silk)과 양털 같은 소재로 만든 모(Wool)를 동물성, 목화에서 얻는 면(Cotton)과 대마나 모시풀에서 얻는 마(Linen)를 식물성, 석면과 같이 광물에서 얻는 것을 광물성 섬유라 한다. 마는 종류가 20가지가 넘지만 옷감용으로는 아마 저마 대마가 대표적이다. 아마를 린넨, 저마를 모시, 대마를 삼베라 한다. 다르게는 모시는 ‘동양의 마’, 린넨은 ‘서양의 마’라고도 부른다.
대마는 인류가 재배한 가장 오래된 작물 중 하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재배되었는데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도 대마 재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고조선 시대 유물로 대마를 이용한 마끈과 마직물인 삼베조각이 출토됐고, 삼국유사에는 김수로왕비인 허 황후의 나라 아유타국에 삼베를 보낸 기록이 나온다.
의료용은 합법이지만 여전히 사회적 금기
자연에서 재배되는 대마는 환각을 일으키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이라는 특별한 성분이 있다. 이 성분 때문에 대마가 불법화되었지만 고서에 따르면 기원전 2700년 신농(神農)씨 때는 대마를 신비한 약초로 묘사했고, 세계적으로는 진통제와 여러가지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됐다. 대마는 삼을 가리키는 마(麻)자를 쓴다. 이렇듯 대마의 쓰임이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불명예스럽게도 마약의 어원이 대마의 마에서 나오게 되어버렸다.
인류의 4대 발명품인 종이도 최초에는 대마를 주원료로 했으며, 해양시대인 19세기 유럽 범선의 돛과 밧줄은 모두 질기고 튼튼한 대마로 만들어졌다. ‘천사의 풀’과 동시에 ‘악마의 풀’로도 불리는 대마는 한해살이 식물로 꽃과 잎을 말리면 대마초가 되지만, 줄기와 껍질로는 삼베를 만들고, 씨앗(헴프시드)은 식품과 오일로, 속대는 건축자재로 활용된다.
THC 성분은 환각성분을 가지고 있지만 칸다비디올(CBD) 성분은 뇌전증 치료제로 사용되고 우울증 치매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등의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나아가 다양한 연구와 임상을 통해 의약품 개발에 적용될 것으로 보임에 따라 2020년 UN 마약위원회가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세계적으로 대마 합법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2018년 우리나라도 대마를 의료용으로는 합법화했지만 여전히 사회적 금기 중 하나다. 대마초가 중독성이 강한 환각 때문에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이유지만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통념은 과장됐음이 밝혀졌다. 오히려 중독성은 술 담배보다 낮고 사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환각성에 대한 위험성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약물로서 대마는 각종 발작을 완화시키고 기존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현저히 적은 장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대마의 의료적 효과를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합법화가 추진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대마의 THC 함유량을 구분하고 관리하는 법 제도는 물론이고 산업용과 대마초용 개념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계는 의료 식품 소재 분야 대마 연구 박차
미국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가 대마초 합법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교훈을 던져준다. 세계는 대마에 대한 연구를 가속하고 의료·식품·소재 분야의 개발을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970년대에 박정희는 군사정권 유지를 위해 대마를 불법화시켰고 그 오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마를 무작정 합법화하기보다는 연구개발을 위한 법 제도의 뒷받침이 먼저 요구된다. 처서날 여름내 입었던 모시옷에 풀을 먹이다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