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강국 위해 중국 필요…인도의 딜레마
부품·장비 수입 늘고 투자제한도 완화 움직임 … 중국배제 공급망 짜려는 미국 난처
세계 최대 인구의 인도는 제조강국을 꿈꾸고 있다. 미국과 서방도 제조강국 인도를 환영한다.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짜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가 제조강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역설적으로 중국이 절실히 필요하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공장이자 해외로 생산역량을 확대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는 인도는 물론 미국에도 딜레마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3연임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인도를 글로벌 제조강국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애플이 최신 아이폰 모델을 인도에서 생산하기로 하는 등 가시적인 성공사례도 있다. 하지만 산업 투자, 공장 일자리 창출,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의 비중 확대 등 목표 달성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인도정부가 생산보조금과 보호관세를 제공했지만 많은 기업들이 인도의 빠른 경제성장에 걸맞은 속도로 제조역량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국영 바로다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민간투자는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3월 마감된 회계연도에는 총 외국인직접투자(FDI)가 2년 연속 감소했다.
인도정부 안팎에서는 중국의 대 인도 투자를 더 많이 허용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수년간 양국의 국경에서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인도정부는 전기차 제조업체인 비야디(BYD) 등 중국 기업들의 투자제안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킨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모디정부는 중국투자에 대한 통제를 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인도 재무부는 연례 경제검토보고서에서 더 많은 중국투자를 환영했다. 지난달 상무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일부 중국투자와 관련한 정책 변경을 진행하고 있다고 브리핑했다. 올해 4월 이후 아이폰 조립업체 중 2번째로 규모가 큰 중국 럭스셰어정밀공업의 인도 투자제안 등 최소 11건의 제안이 승인됐다.
인도 첸나이 소재 마드라스경제대학의 N.R. 바누무르티 이사는 “중국에는 해외투자를 위한 자금이 있고 해외 확장을 원하는 기업들이 있다”며 “인도가 중국투자에 문호를 개방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도와 중국의 무역불균형은 크다. 지난 회계연도 양국 간 무역은 4% 증가한 1184억달러로 집계됐다. 인도의 대중국 수출액은 전체의 14.1%인 166억6000만달러에 그쳤다. 인도는 주로 전기장비와 같은 공산품을 중국에서 수입했지만, 중국으로 수출하는 품목은 주로 철광석과 같은 원자재였다.
재무부의 연례검토보고서를 작성한 인도 수석 경제고문 V. 아난타 나게스와란은 “인도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인도를 글로벌 공급망에 연결하려면 인도가 중국 공급망에 연결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중국이 인도에 투자할 수 있는 분야를 지정하면 인도 기업가들이 중국으로부터 노하우를 습득해 어느 순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다각화하려면 중국에 연결돼야
지금까지 중국의 대 인도 외국인직접투자(FDI)는 미미했다. 인도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회계연도 중국의 대 인도 FDI는 4229만달러로, 인도의 FDI 국가 중 32위에 불과했다. 2020년 양국의 국경분쟁으로 인도가 중국에 대한 FDI 규제를 강화한 이후 중국의 자본유입이 줄었지만 그 이전에도 활발하지는 않았다. 2000년 이후 누적투자액에서 중국은 22위에 그친다.
중국 일부 기업들은 인도 현지기업과 손잡고 성공을 거뒀다. 상하이자동차(SAIC)의 MG 브랜드는 현지 철강업체 JSW와의 합작투자를 통해 인도 전기차시장에서 2번째 큰 기업이 됐다. 2030년까지 인도에서 전기차 100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온라인 패션소매업체 셰인은 인도 최대기업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판매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기업 비보는 노후한 시설을 대체하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 뉴델리 외곽에 스마트폰 제조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인도 일부 학자들은 중국의 투자 증가가 양국의 정치적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뉴델리 소재 안보 싱크탱크 ‘비베카난다 국제재단’ 부연구원 프레르나 간디는 “중국은 여전히 인도의 가장 큰 안보 위협이지만 중국 기업이 인도에 투자해 대규모 자산을 창출하고 인도 경제성장을 지원한다면 인도와 중국 간의 전략적 비대칭과 관련된 큰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달 2일 “미국은 중국 중심 공급망을 피하기 위해 인도 제조업을 찾고 있다”며 “하지만 인도가 스마트폰과 태양광패널, 의약품 등의 생산을 늘리면서 이러한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한 중국 수입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미국에 딜레마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싱크탱크 ‘글로벌 무역연구 이니셔티브(GTRI)’에 따르면 인도의 중국 수입은 전체 수입보다 2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자, 재생에너지에서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에서 인도 수입품의 약 3분의 1이 중국산이다.
인도산업연맹은 현재 회로기판과 배터리 같은 전자부품 수입의 거의 2/3가 중국에서 들어온다고 밝혔다. GTRI는 이러한 중국산 수입량이 지난 5년 동안 3배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인도는 오랫동안 미국 등에 대한 주요 의약품 수출국이었다. 인도는 과거 대부분의 원료를 자체생산했지만 현재는 파라세타몰 같은 중요한 의약품 상당분을 중국에 의존한다. GTRI 보고서에 따르면 2007~2022년 인도의 화학·의약품 수입에서 중국 점유율은 50% 이상 증가했다.
인도는 주요 수출산업인 섬유·의류 생산에서 중국 원사·원단 수입을 늘리고 있다.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성공사례로 꼽히는 자동차산업도 중국산 부품과 액세서리 수입을 늘리는 중이다.
전자제품과 마찬가지로 인도는 태양광패널 생산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지만, 현재 태양광패널에 들어가는 중국산 태양전지 의존도가 훨씬 더 높다. 미국정부 무역통계에 따르면 미국이 인권·노동착취 우려로 중국산 태양광패널 소재의 수입을 제한한 뒤 인도의 대미 태양광패널 수출액은 2022년 전년대비 150% 증가했다. 이듬해인 2023년엔 그보다 더 가팔랐다.
블룸버그NEF 보고서에 따르면 2021~2023년 인도산 태양광패널에서 모듈 셀 웨이퍼 태양유리 등 부품의 중국산 비중은 적게는 50%, 많게는 100%였다.
인도는 공산품 부품을 자체생산하려고 노력하지만 전문지식은 여전히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인도 산업계 대표들은 중국산 기계를 사용해 스마트폰과 섬유, 신발을 만들 수 있도록 중국 기술자 비자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반세기 미국의 전폭적 지원 받은 중국처럼
많은 인도 분석가들은 인도가 중국으로부터 다변화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의 관계에 기대야 한다고 촉구한다.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아쇼카 모디는 “중국은 인도가 글로벌 기술사다리에서 발판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술자 비자 확대를 추진한 인도 휴대전화·전자협회의 판카즈 모힌드루 회장은 “인도가 공급망 대안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세기 동안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중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델리에 있는 아난타 센터의 외교 정책 전문가이자 CEO인 인드라니 바그치는 “우리가 뭐라고 말하든 중국이 최대 부품 제조국인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정부 고위 관리들도 현재 미국 공급망에서 중국산 수입품을 배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관리는 “우리는 공급망을 효과적으로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는 실용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 다음 거기서부터 업스트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도산 태양광패널에 중국산 부품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우리는 긴 게임의 첫 이닝에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인도뿐 아니라 우방과 동맹국들 사이에서 청정에너지 경제를 위해 한나라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위험을 제거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분명한 인식이 있다. 우리는 변곡점에 서 있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