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혁신 기업인 열전 ⑩ 이미연 유진테크놀로지 대표
27년차 ‘공순이’의 끈기…이차전지 부품·장비 강자 등극
노칭금형 국산화로 외산 대체, 국내시장 60% 점유
세계 1위 일본제품보다 우수한 리드탭 양산 성공
연매출 20% 성장세 유지, 다양한 복리후생 운영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한국도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에 저성장까지 복합위기에 빠졌다. 미국-중국의 경제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한 가운데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국기업의 도전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내일신문은 (사)밥일꿈과 기업가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혁신 기업인을 연재한다. 그들의 고민과 행보가 한국경제와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좋은 지침을 담고 있어서다.
어릴 때부터 골목대장이었다. 여자아이 같지 않다는 핀잔을 듣고 자랐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동기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일본계 금형업체가 첫 직장이다. 세번째 직장에서 이차전지와 인연을 맺었다. 설계를 동반한 기술영업직으로 일했다. 직장생활에서 금형과 이차전지 경험을 쌓았다. 이때부터 이차전지에 주목했다.
2009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창업했다. 창업 이유는 단순하다.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하고 싶어서다. 여성 엔지니어로 제대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열심히 전국을 돌아 다녔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자동차 운행기록에 10개월도 안돼 10만km가 찍혔다. 기술과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고장난 이차전지 관련 외산기계 장비부품을 만들어 수리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기술력과 성실함이 알려지면서 주문이 늘었다. 지금은 국내 배터리 3사가 주요 거래처다. 이차전지 주요 장비를 국산화했다. 일본기업이 장악했던 리드탭(이차전지 내부연결 단자) 국내시장의 1위에 올라섰다. 보유한 이차전지 관련 특허는 24건, 디자인도 11건이다.
매년 20% 가량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에는 매출액 100억원을 돌파한 후 지난해 475억원을 기록했다. 10년만에 4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미국 중국 유럽 등지에 법인을 둔 수출기업이다. 지난해에는 코스닥 입성에 성공했다.
여전히 자신을 ‘공순이’라고 부른다. 27년차 여성엔지니어로 잔뼈가 굵은 이미연 유진테크놀로지 대표의 도전기다.
◆제대로 일하고 싶어 창업 = 지난달 21일 방문한 유진테크놀로지는 이차전지 정밀금형 부품과 소재, 장비전문기업이다. 부부가 각자 대표를 맡고 있다. 이미연 대표는 기술영업, 남편 여현국 대표는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청주테크노폴리산업단지에 본사를 두고 있다.
2009년 청주 오송에 60평 남짓한 창고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이차전지 관련 강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주요사업은 이차전지 정밀금형과 정밀기계 부품, 리드탭 생산, 유지 보수 등이다. 최근에는 이차전지생산 관련 자동화장비와 시스템을 LG화학을 비롯한 고객사들 요구에 맞게 제공하고 있다. 생산제품은 △전극공정의 슬리터나이프유닛, 프릭션샤프트 △조립공정의 노칭금형, 포밍금형, 리드탭 △활성화 공정의 디게스머신 등이다. 모두 자체 기술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슬리터나이프유닛은 양극재나 음극재 원단을 일정한 폭으로 절단하는 기술이다. 노칭은 2차전지 양극과 음극을 구분하는 박판필름에 전극형상을 가공하는 기술이다. 프릭션샤프트는 가늘고 길게 자른 전극코어를 감아주는 역할로 이차전지 공정에서 꼭 필요한 부품이다.
노칭금형은 유진테크놀로지의 주력제품이다. 양극 또는 음극의 활물질이 코팅된 전극판을 셀 형태로 자르는 노칭머신에 탑재되는 핵심부품이다. 2020년 이후 국내시장 1위로 60% 점유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까지 고객으로 확보했다.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이 대표는 “초정밀금형기술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초정밀금형은 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미터) 단위 싸움이다. 유진테크놀로지 기술자들이 2~3마이크로미터의 차이만 용납되는 금형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리드탭의 성장가능성도 높다. 리드탭은 이차전지가 기능하도록 전기를 내부와 외부로 흐르게 하는 통로(단자) 역할을 한다. 이차전지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부품이다. 전해액 노출을 방지해 화재나 폭발을 막기 때문에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부품이다.
“리드탭은 세계시장 80% 이상 점유한 일본 스미토모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앞으로가 기대된다.” 이 대표는 자신했다.
◆전공정 깊은 이해가 경쟁력 = 유진테크놀로지의 근본경쟁력은 ‘배터리 생산 전공정에 대한 폭넓은 지식’에 있다. 공정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는 다양한 고객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다. 이는 창업 초기에 다양한 외산장비 개조와 개선, 부품가공과 장비제작까지 모두 경험한 덕이다.
이 대표는 “요즘같이 배터리업계 침체기에도 국내외 고객사 요구를 해결할 방안을 만들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치열해지는 단가경쟁은 혁신을 통한 효율성 향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진테크놀로지는 세상에 쓸모 있는 기업이 돼야 한다.”
이 대표가 희망하는 회사 모습이다. 단순히 수익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다.
따라서 구성원들에게도 억지로 주인의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탄력근무제, 구내식당과 카페, 임직원 종합건강검진, 장거리 거주자 기숙자 제공, 주택자금 대출, 동호회와 자기계발 지원 등 다양한 복리후생을 운영하는 이유다.
이 대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새벽이나 밤에 혼자 걷습니다 한달에 두 권의 책을 읽는다. 공연도 관람한다. 더 나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다.
“유진테크놀로지는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어 나가겠다.” 이 대표의 환한 웃음에 유진테크놀로지의 미래가 보인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