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원대 기술유출 기업인 2명 구속 송치
삼성전자 반도체 핵심기술 중국에 유출한 혐의
솜방망이 처벌 지적에 양형위, 처벌기준 강화
경찰이 4조원으로 추정되는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기업인 2명을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관련 업계에서는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이 국가 핵심 기술 유출을 불러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삼성전자의 ‘20나노급 D램 메모리 반도체’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청두가오전 대표 최 모씨와 임원 A씨를 산업안전기술법 위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송치했다고 10일 밝혔다.
유출된 기술은 회로 크기가 2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인 메모리 반도체와 관련된 것들이다. 종전 메모리반도체보다 작은 크기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속도도 빨라졌다. 반면 전력소비는 줄어 효율이 높다.
조광현 안보수사지원과장은 “최씨가 중국 지방정부와 합작해 국내 기술을 통해 고급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시도했다”며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등 경제안보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최씨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반도체 분야 핵심 임원을 거쳤다. 그는 국내 기업에서 퇴직한 후 2018년 중국 시안에 반도체 제조회사 설립을 시도했지만 투자 실패로 중단했다. 최씨는 2021년 중국 청도에서 재기를 시도했다. 청도시로부터 4600억원을 투자받아 세운 회사가 청두가오전이다.
수사기관은 이번 기술유출에 대해 2018년 사건을 ‘시즌 1’, 2021년 사건을 ‘시즌2로’ 나눠 구분하고 있다.
시즌 1 수사는 검찰이 맡았다. 수원지방검찰청은 최씨가 2018년 중국 시안에 공장 설립을 시도하면서 기술유출을 했다며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최씨를 구속기소했고, 보석으로 석방된 최씨는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시즌 2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경찰이다. 경찰은 2021년 사업 역시 기술 유출을 토대로 이뤄졌다고 봤다. 경찰은 올 1월 최씨 구속을 시도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결국 보완수사를 통해 이번에 신병을 확보했다. 최씨는 검찰에 이어 경찰에서도 구속됐다.
수사기관이 공개한 내용을 종합하면 두차례 공장 설립 과정에서 삼성전자 등이 개발한 수백건의 기술이 통째로 유출됐다. 반도체 공정 관리는 물론 품질관리를 위한 핵심기술이 총망라됐다. 이는 신생업체인 청두가오전의 시제품 완성속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청두가오전은 2021년 12월 공장을 준공했다. 깡통 공장이 아닌 시제품 생산을 위한 R&D생산라인을 포함했다. 청두가오전은 이듬해 4월 시제품 웨이퍼까지 만들어냈다. 투자, 공장부지 마련, 공장준공, 시제품 생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형 반도체 회사는 신기술 개발에서 양산까지 1000명 이상 인력을 투입한다. 시장에 판매할 양산품을 내놓으려면 최소 4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신생업체가 이를 단시일에 해결했다는 것은 기술을 지원받거나, 기술을 훔쳐왔을 때나 가능하다.
청두가오전은 본격 양산을 준비했지만 각종 수사로 인해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이 회사가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최씨 혼자 대량의 기술유출을 해낸 것은 아니다. 최씨는 A씨를 포함해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업계 연구원들을 유혹했다. 승진을 못했거나 퇴직을 앞둔 이들, 국내 회사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경찰은 A씨 외에도 청두가오전에 이직했거나 인력유출에 관련된 사람 등 30여명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몸만 이직했는지, 중요 기술을 가지고 갔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한편 대법원 양형위는 올 3월 산업기술 해외 유출 범죄에 대해 최대 권고형량을 기존 9년에서 15년으로 상향하는 양형기준안을 최종 의결했다. 또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릴 경우에는 최대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을 해외에 유출했을 때 법정형은 3년 이상 유기징역이었지만 그동안 법원의 기본 양형 기준은 1년에서 3년 6개월에 그쳤다. 최대 징역은 15년이었지만 2022년 법원이 해외 유출 사범에 대한 형량은 평균 14.9개월로 12%에 불과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