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블랙리스트’ 관련 4명 추가 입건
경찰 “구속 등 엄정수사 방침” … 관련 사건 42건 수사, 32명 송치
정부 “의료계 자정 노력 필요해” … 의협 “명단 유포 행위에 유감”
경찰이 응급실 등 의료 현장에 남은 의사들의 실명을 아카이브(정보 기록소)에 공개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4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청은 10일 ‘응급실 블랙리스트 등 조리돌림에 대한 경찰청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자료를 내고 “의료 현장에서 성실히 근무하는 의사들의 명단을 악의적으로 공개하는 행위는 엄연한 범죄 행위”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입건된 피의자 중 1명은 아카이브에 진료 중인 의사 실명을 게시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두차례 압수수색과 조사를 통해 혐의를 적용했다.
나머지 3명은 해당 아카이브의 접속 링크를 게시한 이들로, 스토킹처벌법 위반 방조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이들 외에 관련자들을 추적전하고 있다.
◆2500여명 개인정보 공개 =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감사한 의사’라는 이름으로 국외 사이트에 현장에 남은 의사들을 비꼬면서 당시까지 확보한 명단이 담긴 블랙리스트가 올라왔다. 이 사이트에는 전공의·전임의·군의관·공보의는 물론 복귀를 독려하는 의대 교수까지 공개됐다.
지난 7일에는 ‘응급실 부역’이라는 이름과 함께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 실명 등을 공개한 자료까지 등장했다. 또 ‘군 복무 중인 와중에도 응급의료를 지켜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응급실에 파견돼 근무 중인 군의관으로 추정되는 의사들의 실명이 추가로 공개됐다.
전체 리스트에 포함된 복귀 전공의, 전임의, 교수, 의대생 등을 합치면 2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각종 개인 정보를 포함한 신상도 공개됐다.
이 블랙리스트는 접속 주소만 알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사실상 공개 자료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의료 현장에서 성실히 근무하는 의사들의 명단을 악의적으로 공개한 행위는 엄연한 범죄 행위”라면서 “중한 행위자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추진하는 등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신속·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의정갈등 초기부터 논란 = 의사 블랙리스트는 의정갈등 초기부터 논란이 됐다.
지난 3월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 병원에 남은 전공의 명단이 공개됐다. 또 7월에는 의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실명까지 공개한 명단이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유포됐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의사 집단행동 초기부터 진료 복귀를 방해하는 명단 공개, 모욕·협박 등 조리돌림에 대해 신속·엄정 조치 중”이라며 “관련자들을 계속 추적 중”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그간 진료 복귀 방해 행위와 관련해 총 42건을 수사해 48명을 특정하고 32명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송치했다.
◆복귀 고민 의사 근무 의욕 꺾어 = 이와 관련해 정부는 의료계의 자정 노력을 촉구했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0일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일부 악성 사이트에서 진료에 헌신하고 있는 의사의 명단을 공개해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을 위축시키고 복귀 여부를 고민하는 의사들의 근무 의욕을 꺾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실장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야기할 수 있는 우리 사회 공동체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행위”라면서 “정부는 이들을 수사 의뢰하고 수사기관과 협조해 엄단할 방침이지만, 그와 더불어 의료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의협 “피해 발생하면 갈등 중재” = 한편 논란이 커지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0일 블랙리스트 작성 중단을 당부했다.
의협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감사한 의사 명단’, 일명 응급실 블랙리스트 작성·유포로 의료계 내 갈등이 불거지고 국민들께 우려를 끼친 데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이어 “명단을 작성한 회원들의 절박함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공격하고 비난하며 동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 생명과 건강을 수호하는 의료계일수록 이런 상황에 대해 더 자성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협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 강행을 저지하기 위한 단일대오를 형성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현 사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협은 명단 유포에 따른 피해 사례가 발생할 경우 회원 간 갈등 해소를 위해 중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