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2024-09-13 13:00:02 게재

노는 사, 사는 노 입장에서 갈등을 본다면

막바지 무더위의 심술로 지난주 낮 최고 기온이 32도를 웃돌곤 했으나 며칠 전부터는 찬공기를 동반한 기압골의 영향에 아침저녁으로 다소 곳 가을 날씨가 찾아오고 있는 듯하다. 한반도로 향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던 제11호 태풍 ‘야기’의 진로도 중국 남부로 정해졌다고 한다.

매년 이맘때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노동쟁의 조정신청.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에 열대야까지 곁들여져 체력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음을 느낀다. 언제부터인가 피곤함을 느낄 때마다 습관적으로 얼음 몇 덩어리가 들어 있는 냉커피 한잔과 초콜릿 몇조각을 들고 정부세종청사 옥상을 향하는 버릇이 생겼다. 정원이 조성돼있는 청사 옥상은 상큼한 공기를 맞고 싶을 때마다 찾는 나의 쉼터이기 때문이다.

옥상정원은 정부세종청사 15개동 건물을 이어서 조성한 세계 최대 규모로서 기네스 인증까지 받은 정원으로 그 거리가 3.6km나 된다. 옥상정원에는 각종 유실수, 넝쿨터널, 베리원 등 테마별 공간들이 조성됐고 계절별로 심어지는 수종도 각각 달라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한없이 힘이 내려앉는 오늘 밤에도 이곳을 스스럼없이 찾아왔다. 쉬잉~ 쉬잉~

옥상 문을 열자마자 뜻밖의 손님이 나를 반겨준다. 한주 전까지만 해도 습기를 가득 먹어 후덥지근했던 바람은 어느새 나름 시원한 바람으로 바뀌었고 그 바람이 양팔의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등을 타고 아랫배를 한바퀴 돌아 서늘하게 빠져나가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한여름 사우나에서 냉탕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옥상정원의 나무들 사이를 북쪽에서 불어오는 된바람이 옥상 주인이라도 되는 양 마구 휘저어 다니는데 내 몸을 한바퀴 도는 시간은 찰나. 한참이나 서서 그 느낌을 반복적으로 맛보아 본다.

예상치 못한 시원함에 생각은 커피 한모금과 함께 일주일 전 조정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금난으로 상여금을 증액할 수 없다는 병원 대표의 하소연, 계속되는 병원 적자로 증액은 불가능하다고 읍소하면서도 미안해하는 대표.

갓 입사한 직원들이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에 이직을 하고 있어서 상여금으로라도 보전을 받아야 한다는 노조 집행부의 강한 파동. 노조위원장은 결연한 목소리로 파업으로라도 요구안을 관철시키겠다고 울부짖는다.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진 풍선, 언제 터질지 그 시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오후 2시에 시작됐던 조정회의는 14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서 다음날 새벽 4시에 마무리됐다. 노사의 팽팽했던 분위기로 결렬이 당연한 수순이었을 터인데 그 흐름과는 달리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제시한 조정안을 노사가 모두 수락을 한 것이다. 특급 태풍처럼 전국을 강타할 수 있었던 노동쟁의가 중노위 조정과정을 통해서 해소가 된 것이다. 해결의 끈은 서로 간의 양보였고 애사심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마음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얹혀준 중노위가 있었다.

시선이 밤하늘로 향한다. 오른쪽 어깨너머로 조잡한 듯하면서도 운치있게 자리잡은 털구름과 어릴 적 과자봉지 안에 숨어 있었던 별사탕처럼 듬성듬성 위치한 이름 모를 별들, 그리고 동녘 편으로는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는 초승달도 보인다.

오버랩되는 회사 대표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울먹거렸던 노조위원장의 목소리. 모두가 우리를 옥상정원으로 초대하는, 사회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저 하늘의 별과 초승달이다.

마음이 깨끗하게 씻긴 뒤라 그런지, 고요함의 심상을 품은 채로 그만큼 더 깨끗하고 파래진 하늘. 도심길에서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하늘이 이곳에서만큼은 항상 길벗으로 다가오고 있다. 도심의 시끄러운 소리도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 있는 곳을 조금 달리했을 뿐인데 이곳에는 지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어둠 속에 갇혀 희미하게 보이는 도심쪽으로 시선을 옮겨 본다. 저 속에 도사리고 있을 노사 간의 수많은 갈등들.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으나 그럼에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그럴 때마다 이곳 옥상정원에 잠깐 서 있어 보는 것처럼, 잠시나마 서 있는 곳을 달리해 노는 사, 사는 노 입장에서 그 갈등을 바라본다면 해결의 끈이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원했던 된바람은 차가움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입안에서는 상큼함이 발산되고 있다. 커피 한모금에 초콜릿 한조각을 잇달아 넣으니 서로가 뒤엉켜 은은하면서도 깊은 쓴맛이 달콤함과 혼합돼 상큼함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맛에 옥상의 밤하늘 풍경들이 더해지니 상념은 잠시 사라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의 쾌감들이 밀려온다.

김창진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과 사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