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금융의 진화 방향

2024-09-13 13:00:01 게재

기후금융이란 기후변화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또는 완화(mitigation)와 적응(adaptation)에 필요한 정책과 투자 등을 지원하는 공공 또는 민간의 자금조달 활동이다. 다른 환경문제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구 증가와 물질적 욕구를 억제하고 소비자의 의식과 생활방식의 근본적 변화 등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술발전을 통한 문제해결이 가능하며 최선이라 믿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기후 기술개발을 위한 대형 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기후금융의 발전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나 국내에서 기후금융 시장의 규모는 아직 미흡하다. 미국의 비영리연구기관 CPI(Climate Policy Initiative)에 의하면 글로벌 기후금융 규모는 2021~2022년 동안 연간 1조3000억달러로 2022년 전세계 GDP의 1%에 불과하다. 또한 2023년 이후 연간 8조~9조달러, 2031년부터 2050년까지 연간 10조달러가 필요하다는 전망에 비추어 보면 현재 기후금융 규모는 2050넷제로 달성에 턱없이 부족하다.

기후금융의 최근 진화 방향은

현재의 경제위기와 복잡한 국제정치 상황에서 2050넷제로 달성에 대한 회의가 커져 가는 가운데 최근 기후금융의 방향은 몇가지로 진화하고 있다.

첫째, GCF(Green Climate Fund), GEF(Global Environment Facility) 등 기후금융을 제공하는 국제금융기구나 월드뱅크,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다자간개발은행 (multilateral development banks)이 제공하는 공적 자금시장의 한계를 고려할 때 민간 금융시장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CPI의 분석에 의하면 2021~2022년 기간 동안 민간기후금융에 의한 자금조달은 6260억달러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가장 보편적 기후금융 수단인 녹색채권 시장도 정체되어 있다. 2021년 12조5000억원이었던 한국의 녹색채권 발행금액이, 2023년 7조4000억원으로 감소했으며 올해도 유사한 규모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넷제로 달성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넷제로를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대(The Glasgow Financial Alliance for Net Zero, GFANZ)에 의하면 전환금융은 넷제로를 위한 계획적이면서 실질적인 경제 전환에 필요한 투자 금융 보험 및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포함한다. 녹색금융으로 분류되지 않더라도 현재 기후변화 또는 다른 환경영향을 줄여서 탄소중립이나 지속가능한 경제를 달성한다면 전환금융에 해당하는데 탄소다배출 업종이지만 감축이 어려운 철강 항공 해운 등의 산업에서 탈탄소 계획의 실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전환금융의 정의와 분류, 가드레일(guardrail)이나 모니터링 방법 및 기준 등의 결여로 그린워싱의 위험도 안고 있어서 경제 전반의 저탄소 전환에 도움이 되고 탄소고착(carbon lock-in)을 피할 수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셋째, 에너지 문제 위주 대응에서 통합적 접근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생물다양성과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를 통합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감축과 적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이슈는 최근 TPC(triple planetary crisis)로 불리면서 인류의 환경위기이자 동시에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면 순환경제는 탄소감축을 통한 기존의 탈탄소 해법의 보완 수단이 되며, 청정에너지 전환의 지속가능한 규모 확대(scaling)를 지원하고 적응 능력을 향상시킨다.

동시에 자연이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ecosystem services)는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함과 동시에 기후변화 해법이 된다. 세계경제포럼(WEF)에 의하면 2020년 글로벌 GDP 44조달러의 절반 이상이 자연과 생태계서비스에 의존했는데 특별한 조치가 없으면 2030년까지 2.3%인 2조7000달러의 GDP 손실을 겪게 될 것이다.

반면에 자연 보전과 투자 강화로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 경제를 실현하게 된다면 매년 10조달러의 비즈니스 기회와 2030년까지 3억95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2022년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당사국회의(COP15)에서 합의한 GBF(global biodiversity framework)와 2023년 발표된 TNFD(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 가이드라인도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서비스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반영하고 있다.

기후정책, 시장에 확실한 신호 주지 못해

금융은 실물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므로 금융확대를 통한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기후 프로젝트가 없으면 기후금융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기후금융의 규모와 시장 활성화 여부는 기후프로젝트 투자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2024년 3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금융 지원 확대방안에는 2030년까지 정책금융 420조원 공급, 신재생에너지 설비투자확대를 위해 은행권 출자를 통한 9조원의 미래에너지 펀드와 3조원 규모의 기후기술펀드 조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환경부는 녹색투자 촉진을 위해 K-택소노미 개정, 2027년까지 30조원의 민간 녹색투자 유치, 배출권거래제도 개선 등의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기후금융 활성화를 위한 바람직한 조치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이 시장에 주는 신호(signal)이다.

2023년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계획은 핵심적인 감축 수단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산업 부분의 배출감소 노력을 축소하고 대신 국제감축이나 탄소포집활용저장(CCUS)에의 의존도를 높일 것이라 표명하고 있다. 국제감축은 국내 배출량의 직접 감축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CCUS는 미래가 불확실한 감축 수단이라는 점에서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주지 못한다.

기존 목표인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 30.2%를 21.6%로 낮추고 대신에 원전 발전 비중을 23.9%에서 32.4%로 상향한 것 등은 장기적 지속가능경영 경쟁력 향상보다는 산업계의 단기적인 경쟁력 논리를 더 우선시한다는 시그널을 시장과 기업들에 보낸다. 글로벌 사회에서 선진국 기업들에 의한 RE100 강요, 탄소국경조정제도, 스코프3 배출량과 금융배출량 공시 의무화 흐름 등에 비추어 볼 때 국가의 미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우려를 자아낸다.

민간금융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지구의 친구(Friends of Earth) 등 시민단체들의 분석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금융기관이 2020~2022년 동안 해외 화석연료, 주로 가스 프로젝트와 미드스트림(midstream) 운송에 매년 100억달러를 투자해 캐나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한국의 재생에너지 투자 및 금융은 지지부진하여 일본의 1/3에 그친다. 국내 기업들이 RE100을 선언하고 실천함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장애물, 예를 들면 태양광 발전을 위한 부지 확보의 어려움, 재생에너지 송전능력의 부족, 한전의 독점적 시장 지배에 따른 에너지 시장가격의 왜곡 등에 대한 대책 없이 원전 비중 확대만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헌재 판결 계기로 정부 정책기조 전환을

최근 헌법재판소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기후금융 활성화를 통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정책기조 전환이 선행되어야 하며, 기업들은 단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전략적 사고로 글로벌 사회와 정합성이 있는 에너지 및 기타 기후변화 대응을 해야 한다. 그리고 금융기관은 적극적으로 기후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합리적이며 체계적인 위험분석과 프로젝트 평가기법을 갖추어야 한다.

김종대 SDG연구소 소장 인하대학교 ESG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