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현의 한반도워치

외교현장에서 만난 북한, 우리가 견지해야 할 대북정책

2024-09-19 13:00:03 게재

2011년 4월 필자는 비엔나에 부임했다. 그 당시 중동은 튀니지에서 노점상 청년의 분신으로 시작된 민주화의 불길, ‘아랍의 봄’이 확산되고 있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의장에서 만난 여러 유럽대사들은 이 불길이 북한까지 번질 것 같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에는 청년들이 10년 이상 군 복무를 하기 때문에 아랍과 달리 길거리에 분노에 찬 청년들이 없다”고 설명했다.

몇달 뒤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 체제가 이변 없이 들어섰다.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됐을 때 김일성의 사위로서 20여년째 비엔나에 체류해 온 김광섭 북한대사에게 변고가 생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우습게도 그가 혹시라도 망명을 요청하지 않을까, 그런데 전화를 놓치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다.

시간이 흘러 2017년 12월 북한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채택하는 유엔 안보리 회의에 비장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결의안이 채택될 때 1987년 브뤼셀에서 북한의 고위급 귀순인사를 맞이하던 일부터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북한대사와 조우해 나누었던 대화가 모두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국인은 누구나 북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6.25때 겪었던 부모의 경험도 북한에 대한 제 각각의 입장을 만든다. 우리에게 ‘북한’이라는 말은 한민족을 떠오르게 하는 감성적 단어이지만 ‘북한문제’는 핵 위협을 비롯한 현실의 어려움을 연상시킨다.

북한문제는 전문가도 많고 이슈도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상황의 변화나 진영논리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 것도 볼 수 있다. 필자에게도 해외에서 북한문제에 관해 약간의 경험을 하면서 하나의 북한관이 생겼다. 북한에 대해 감성보다 이성적 접근을 하고 국내정치 보다 외교적 고려를 훨씬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 개인의 소견에 불과하지만 안보 평화 통일방안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안보우려 의존 ‘적대적 공존’ 관행 깨야

안보문제로 북한을 볼 때 핵무기가 단연 첫째 이슈이다. 북한의 핵은 당초 체제생존용으로 출발했으나 협박용으로 진화했다. 이제는 실질적인 안보위협이며 남북관계의 진전을 막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의 우경화와 동북아 군비경쟁의 구실이 되고 있다. 그간 북핵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쉬울 뿐이다.

비핵화는 미국과 중국의 해결 노력이 핵심 관건이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핵문제를 북한 관련 다른 문제와 분리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핵문제의 볼모가 되고 말 것이다.

이와 연관된 문제는 우리의 핵무장 주장이다. 최근에는 잠재적 핵 보유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모두 개방형 통상국가인 한국으로서 취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압도적인 미국의 핵보다 우리의 핵무기가 북한 핵 억제에 효과적일지, 한미동맹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무엇인지, 핵실험은 어디서 할 것인지, 대안은 무엇이 있는지, 모두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는 긴 토론을 통해 국민적 컨센서스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총체적 국력과 군사력 차이에 비추어 전면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따라서 안보우려를 과도하게 조장해 적대적 공존을 꾀하는 관성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반도에 드리우는 신냉전의 논리는 정확한 현실인식이 확산되면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안보를 소홀히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한미 동맹을 잘 지키면서 국방력을 우리 국력에 맞게 키워 나가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는 분단국이 취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자유의 북진통일’ 방안은 비현실적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만으로는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다. 안보는 물론 통일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평화정책이 있어야 한다. 평화정책은 남북이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체제 전복을 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상호교류를 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북한은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이후 민주당정부의 평화정책에 대해서도 그 의도를 의심해 교류를 본격화하는 데에 주저했다. 교류의 확대가 가져올 체제불안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간의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만들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다음에는 남북간의 협의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하고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외교적 노력도 병행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야 북한도 합의를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에서 흡수통일을 암시하는 것은 금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다” 구호가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다. 올해 광복절 기념식에서 발표된 ‘자유의 북진통일’은 지난 수십년간의 대북정책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자유의 북진을 반길 리 없는 북한이 왜 우리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이겠는가? 구호성 정책이며 자칫 평화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사실 분단체제에서 추진해야 할 평화정책은 북한이라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것은 나올 수 없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교류를 지속해 나가는 가운데 무력충돌을 피하고 전쟁의 위험을 낮추는 것이 현실적 방책이다.

평화통일 위한 국제 공조에 외교력 집중을

오랜 단일 민족국가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통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합의와 호의적인 국제정세가 필요하다. 분단이 2차대전 종전과 냉전체제의 탄생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에 국제정세의 변화가 없으면 통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국제정치 상황 변화 속에서 정권의 붕괴가 흡수통일로 이어진 독일의 경우 주민들의 태도 또한 중요한 변수였다. 우리도 북한 주민들이 우리에 대한 적개심을 갖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확성기 방송과 풍선 날리기를 주고받는 것은 경제규모가 40배나 되는 우리가 할 일은 아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부가 아닌 남북교류협력부의 이름으로 꾸준히 교류협력을 지속해 왔다면 통일의 마일리지가 많이 쌓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북한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공공연히 확산시키면서 북한인권을 집중적으로 거론한다. 붕괴론은 북한정권을 자극해 오히려 붕괴를 예방케 할 수 있다. 설령 급변사태 조짐이 있더라도 이를 공공연히 언급하기보다 전쟁 가능성을 막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인권도 물론 중요하며 인도적 지원과 함께 잊어서는 안되는 이슈다. 하지만 우리가 인권에 우선순위를 두면 북한은 체제 공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국제적 공조에 충실히 동참하는 것이 현명한 방안이다.

이제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우리는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실현 가능한 정책을 추진하도록 핵을 포함한 북한문제에 관해 새롭고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협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새로 협상이 시작되면 6자회담처럼 핵문제만 붙들고 있을 게 아니라 통일을 염두에 두고 북한문제 전체를 종합적으로 논의하도록 우리가 이끌어 나가기 바란다.

안보 평화 통일정책으로 나누어 보았지만 결국 모두 연계되어 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바꾸어 가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평화통일도 달성해야 한다.

2년 전 유엔회의장에서 마주친 북한대사는 필자에게 “조국에 돌아가서도 통일사업을 계속 잘하라”면서 작별인사를 건넸다. “지금 상황에서 통일사업이라니 평화유지가 최우선입니다. 김 대사도 한반도에서 전쟁 나지 않게 노력해 주시오.” 이것이 필자의 진심어린 답이었다.

조 현 전 유엔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