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회적책임론으로 확대

2024-09-19 13:00:04 게재

“단순 쩐의 전쟁이어선 안돼” 여론 형성

기간산업 첨단기술 유지·고용안정 주목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쩐의 전쟁에서 사회적 책임론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풍이 사모펀드인 MBK 파트너스와 연합해 지분매수에 나서자 고려아연 현 경영진은 국가기간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약탈적 인수합병(M&A) 반대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사회, 정치권까지 가세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관련기사 20면

경영권 분쟁은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9월 13일부터 10월 4일까지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최소 144만5036주(6.98%)에서 최대 302만4881주(14.61%)까지 사들이는 공개매수를 진행한다고 밝히면서 재점화됐다. 공개매수가 성공할 경우 영풍과 MBK 측 지분은 최대 47.7%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최대 2조원이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구조는 영풍측이 33.13%, 고려아연측(우호지분 포함)이 33.99%를 갖고 있다. 국민연금(7.57%)과 자사주(2.39%)를 제외하면 22.92%의 유통물량이 있다. 물론 현대차(5.05%) 한화(7.75%) LG화학(1.89%)이 지속적으로 고려아연 현 경영측에 우호세력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전제할 경우다.

MBK파트너스는 M&A를 위한 자금확보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개매수 첫날인 13일 고려아연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인 66만원을 넘어서면서 계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19일 시가도 67만9000원부터 거래됐다.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는 법적 분쟁으로 확산됐다. MBK와 영풍은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려아연 회계장부 등의 열람 등사 가처분 신청과 고려아연에 대한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을 냈다. MBK는 이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 대해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배임 등 5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18일 입장문을 통해 “기업사냥꾼 MBK의 약탈적 M&A에 반대한다”면서 “투기자본으로부터 회사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MBK와 결탁해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당사의 주주 영풍은 그동안 석포제련소를 운영해 오면서 각종 환경오염 피해를 일으켜 지역 주민들과 낙동강 수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왔다”며 “대규모 적자로 경영능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사는 전통적인 제련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차전지 소재와 자원순환(폐배터리 리싸이클링), 신재생 에너지 등 신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자칫 국가기간산업의 핵심기술이 해외유출되거나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려아연은 아연·은·인듐 등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 위상을 지닌 업체다. 최근에는 친환경 에너지·소재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국내 자동차·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핵심 공급망을 담당하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자본시장 논리와 산업적 이해관계를 넘어 지역사회 및 정치권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고려아연 생산 시설이 있는 울산지역 정치인들은 고려아연 현 경영진측에 적극적인 지지의지를 보이고 있다. 단순 쩐의 전쟁으로 결론나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사모펀드의 주된 목표가 단기간내 높은 수익률 올기기임을 고려하면 인수 후 연구개발(R&D) 투자 축소와 핵심 인력 유출, 지역 고용시장 위축, 해외 매각 등이 시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시장은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도 제안했다.

울산시의회도 김종섭 의장 직무대리를 비롯한 시의원 22명 일동 명의로 17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고려아연은 50년간 울산시민과 함께한 향토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이라며 “적대적 M&A로 중국 자본에 넘어가게 되면 울산 고용시장과 시장 질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MBK파트너스는 18일 입장문을 내고 “주식 공개매수는 현재 최대주주인 영풍 측의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적대적인 행위, 경영권 탈취와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기간산업인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 수도 없고, 팔지도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어 “경남 창원에 있는 두산공작기계(현 DN솔루션즈)를 인수한 적 있지만 지금 울산시에서 걱정하는 일들은 하나도 벌어지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인수할 때 세계 6위권이었던 회사를 팔 때 3위 안에 올려놨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사회적책임론을 등에 업은 현 고려아연 경영진측이 대기업 우호지분 유지와 약 20%를 웃도는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여부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 운영진은 최근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고려아연과 같이 주주환원율 최고의 회사는 소액주주가 작은 힘으로라도 지켜내 ‘동학개미’가 때로는 회사와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사례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 따르면 현 경영진이 이끄는 고려아연은 연결 기준 상반기 주주환원율 71%(개별 기준 61%)를 달성했다. 상반기 순이익 2879억원을 기록한 고려아연은 지난 8월 2055억원 규모의 중간배당도 공시했다.

이재호·서원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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