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출범후 57년, 동남아의 상전벽해

2024-09-20 13:00:00 게재

개혁과 통합 가속화로 세계경제 견인 … 2030년 GDP 4.5조달러로 세계 4대경제 예상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순회 의장국인 라오스가 7월 21일부터 27일까지 비엔티안에서 제57차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 및 관련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는 카오 킴 호른 아세안 사무총장과 참관인(업저버) 자격으로 참석한 통티모르 외교장관도 함께 했다. 사진 아세안 홈페이지
1978년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등소평의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로 탄력을 받아 천지개벽으로 이어져 중국을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으로 도약시켰듯이 동남아는 1967년 8월 8일 지역 협력체 아세안을 출범시켜 지난 57년간 글로벌 경제의 일원으로서 개혁과 통합을 가속화 한 결과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아세안 10개 회원국 GDP는 약 3.6조달러로 추산된다. 2030년 까지는 4.5조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아세안을 세계 4대 경제로 격상시킬 것이다. 상전벽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세안은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글로벌 경제 구도 와중에도 경제 통합을 확고하게 밀고 나갈 것이며 계속해서 성장의 횃불이 될 것이다.

◆동남아국가 대부분 강대국 식민지 경험 = 1967년 8월 8일 아세안 창립 전 동남아는 어떤 모습 이었을까? 아세안 출범 전 동남아는 복잡하고 요동치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소용돌이에 직면해 있었다. 동남아에 있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는 역외 초강대국들의 영향 속에서 탈식민화, 정치 불안 및 지역 안정 모색으로 특징지어 졌다.

동남아는 19세기 및 20세기 초에 걸쳐 대부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 강대국들에 의해 식민화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식민지는 종종 과격한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였다. 신생 독립국들은 취약한 정치체제와 저개발 경제를 안고 있었다. 동남아 지역은 냉전의 영향 한가운데 노정되어 초강대국 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전쟁과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중국이 주요 지역 행위자로 활동하는 가운데 미.소 간의 냉전은 동남아의 지정학 구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남아는 미국이 반공 정권과 내전을 지원하고 중.소가 공산주의 운동을 지지하며 각자 영향력 확보를 위한 전장이 되었다.

◆보호주의와 수입대체산업화, 공통 전략 = 미국은 동남아의 한 나라가 공산주의에 넘어지면 도미노 이론으로 이어져 다른 나라들도 따를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이런 믿음이 동남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적 경제적 개입으로 귀결되었다. 신생 독립국으로서 다수의 동남아 국가들은 냉전 시기 비동맹 입장을 유지하였다. 서방이나 동방 진영과 긴밀히 제휴하라는 압력에 저항해 왔다. 그렇지만, 이는 초강대국들의 동남아 지역에 대한 강력한 개입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다른 한편, 동남아의 식민지 경제는 주로 채취형 산업 위주로 구성 되었다. 고무, 주석, 석유 및 열대 농산품 같은 원재료를 식민 종주국에 수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인프라는 주로 이러한 식민지 이해관계에 부합되도록 개발되었으며 아세안 이전에 동남아 국가들 간에는 경제 협력이 거의 없었다.

보호주의 정책과 수입대체산업화는 공통의 전략이었다. 다수의 동남아 국가들, 특히 서방 세계와 연동된 국가들은 그들의 경제를 재건하고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대외원조에 의존하였다. 예컨대 미국은 공산주의 영향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필리핀과 태국에 상당한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제공했다.

◆예상깨고 성공적 지역협력체로 거듭나 = 동남아가 1967년 8월 아세안을 결성한 지 올해 57주년을 맞이하였다. 57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의 거울에 비친 아세안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 다가와 있을까? 녹록치 않은 지정학적.지경학적 현실과 식민지 유산 극복 및 국가 재건 과제 앞에 놓인 숱한 도전과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몇 가지 점에서 지구촌의 예상을 뛰어넘어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적 지역 협력체로 거듭나고 있다.

몇 가지 핵심 분야에서 아세안이 달성한 성취는 초기의 회의론을 뛰어넘어 왜 아세안이 지역과 세계의 역동성에 “주목할 만한 힘”이 되었는 지를 설명해 준다. 첫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복원력 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정치 체제, 경제 발전, 종교, 언어 및 문화 측면에서 극히 다양하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불협화 또는 붕괴 예측을 깨고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둘째, 정치적 안정과 갈등 회피가 두드러진다. 역사적으로 갈등과 경쟁으로 점철된 동남아는 아세안 출범 이래 괄목할 만하게 안정을 누려왔다.

◆세계에서 역동적 경제성장 지역 중 하나 = 셋째, 경제 통합과 성장을 빼놓을 수 없다. 아세안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 경제성장 지역 중의 하나로 변모하였다. 2015년 출범한 아세안 경제공동체는 무역 장벽의 제거와 투자 유입의 증가 및 통합의 심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아세안의 글로벌 경쟁력은 신장되었으며 전체로서 아세안은 이제 약 3.6조달러의 통합 GDP로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블록 중의 하나를 대표한다. 무역, 투자 및 점진적 경제 개혁에 대한 아세안의 개방적 접근 방식은 이 지역이 제조업, 서비스 및 기술의 글로벌 허브로 부상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다.

넷째, 글로벌 힘겨루기에서 지정학적 적합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미국 및 인도 같은 주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아세안은 지역 외교에 있어서 성공적으로 중심적 역할을 유지해 오고 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 아세안 지역안보포럼 같은 지역 구도에서 아세안의 중심성 유지는 아세안이 글로벌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적 대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숱한 대내외 도전에 유연한 적응성 과시 = 다섯째, 숱한 도전에 직면하여 유연한 적응성을 과시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아세안은 대내외의 도전을 창의적으로 다룸으로써 괄목할만한 적응 능력을 보여 주었다.

아세안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및 미얀마 같은 나라들이 비록 정치 체제와 경제발전 단계에서 원래의 아세안-5와 현격한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더 나아가 아세안은 한.중.일과 아세안+3 프레임워크 설립에서부터 EU, 미국, 러시아 및 기타 국가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하여 역외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왔다.

여섯째, 지역 및 글로벌 위기 대처 능력이 예상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아세안은 지역과 글로벌 위기 대응에서 집단적으로(collectively) 행동할 수 있었다.

예컨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시에 아세안 회원국들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그 위기가 더 깊은 협력과 칭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와 같은 지역금융협력 프레임워크 강화를 가져왔다.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대응을 조정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백신에 대한 접근을 안정화하는 등 협업을 이루어 냈다. 일곱째, 글로벌 관여와 다자주의 추구이다. 아세안은 글로벌 다자주의에 있어서 핵심 행위자가 됨으로써 기대를 뛰어 넘었다.

◆지구촌 평균보다 높은 4.5% 경제성장 = 결론적으로 말해, 아세안의 기대치를 뛰어 넘는 능력은 지역주의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과 다양성을 다루는데 있어서 탄력성 및 변화하는 글로벌 역동성에 적응하는 능력에 주로 연유한다.

아세안이 안정과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온 동남아 지역은 지구촌 평균보다 더 높은 4.5%라는 견고한 경제 성장을 유지하였다. 또한, 아세안은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었다. 2023년 외국인 투자유치 총액은 2290억달러(한화 약 304조원)로 다른 개도국 경제를 능가하였다.

아세안의 결성은 이 지역의 역사적 변모와 함께 동남아를 과거의 분열을 극복하고 아태지역의 단합과 협력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세안 회원국들 간에 평화, 안정, 협력 및 발전이라는 공유된 사명이 강력한 유대를 구축하였다. 아세안은 계속해서 이 임무 달성을 위해 더 높은 고지에 도달하려고 한다.

올해는 한.아세안 관계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한.아세안 관계는 다음 달 라오스 개최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포괄적전략 파트너십”으로 격상될 것이다.

아세안이 역외 파트너 국가들과 맺고 있는 협력 관계에서 최상위 협력 관계로 격상되며 이를 계기로 한.아세안 관계는 질적 양적으로 도약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현 정부의 아세안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 구상’ 역시 그 이행에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인-태 전략과 아세안의 인-태 전략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 간의 상호 협력 역시 가속 페달을 밟게 될 것이다.

◆불리한 상황에도 아세안 미래는 밝아 = 다른 한편, 아세안 경제 규모는 현재 세계 5위에서 2030년 까지 4.5조달러로, 세계 4위로 격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이정표를 달성하는 것은 아세안이 자체 경제통합을 더 심화하고 디지털화를 촉진하고 비아세안 파트너들과 무역.투자 관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아세안은 한국인 제1위 방문 대상 지역으로 우리의 제2위 교역 상대방이며 제5위 해외 투자처이다. 아세안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한.아세안 경제.인적 교류의 폭과 범위가 이에 상응하여 더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도록 밑바탕을 견고하게 잘 깔아야 할 것이다.

간킴용(GanKimYong) 싱가포르 부총리는 지난 8월 29일 ‘아세안 컨퍼런스(ASEAN Conference) 2024’에서 이렇게 아세안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세계가 미.중 무역 분쟁,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대만 해협의 긴장 및 점증하는 보호주의 한가운데에서 투자자들에게 훨씬 더 어려운 장소가 되었다. 이 모든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아세안은 유망한 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미래로 나아갈수록 아세안은 점차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 지역의 성장은 탄탄한 내수와 상품과 서비스 수출의 개선 그리고 젊은 인구 주축으로 뒷받침 되고 있다. 지정학적 요인으로 촉발된 제조업과 공급망의 다변화는 이 지역으로 계속해서 강력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을 견인한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