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행정통합 모델 도쿄도처럼?
통합논의 지자체들 관심 높아져
“사전논의·준비단계 필요” 지적도
대구·경북에서 시작된 시·도 통합논의의 쟁점이 통합 지자체의 행정체제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통합 이후 지자체 형태를 광역시-자치구 형태로 할지, 도-시·군 형태로 할지가 핵심이다. 우리의 자치구에 해당하는 특별구와 시·군에 해당하는 시·정·촌을 모두 갖고 있는 일본 수도 도쿄도의 행정체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경북 통합논의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있지만 새로운 행정통합 모델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논의의 시작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내놓은 대구경북특별시 설치안이다. 지원기관인 경북도를 폐지하고 집행기관인 특별시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그러자 이철우 경북지사는 일본 도쿄도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도 산하 시·군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다. 일본 수도인 인구 1410만명의 도쿄도는 23개 특별구와 39개 시·정·촌이 동시에 설치돼 있다.
이후 도쿄도 사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충남과 통합을 준비 중인 대전시도 도쿄 사례 연구를 시작했다. 대전세종연구원과 학계에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통합 모델 연구를 요청했다. 경남과 통합을 추진 중인 부산시 역시 도쿄도 안을 바탕에 두고 통합 후 지자체의 형태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행정체제 개편이 시·도 통합 쪽으로 가면 자연스럽게 도쿄도 형태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통합을 고민하는 지자체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도쿄 역시 현재의 비효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행정체제 개편을 논의 중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도쿄도 내 23개 특별구 행정체제 개편은 오래 전부터 제기된 쟁점이다.
실제 도쿄 23개 특별구 단체장들은 2007년 ‘도의 구 제도 폐지와 기초지자체연합 구상’을 통해 특별구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요 방향은 기초지자체로서의 특별구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도쿄도 내 지나친 행정 일체성에서 탈피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행정체제도 특별구가 아닌 도쿄도 산하 시 형태로 전환하자고 요구했다. 이후 도쿄도와 특별구 시·정·촌이 함께 2009년 설치한 ‘도쿄의 자치 모습 연구회’에서 도와 구·시·정·촌의 역할분담 등을 주제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학계에서도 도쿄도 23개 특별구를 시로 재편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23개 구를 모두 시로 전환하는 안, 하나로 통합해 도쿄시를 부활하는 안, 23개 구를 6개 시로 통폐합하는 안 등이다. 학계에서는 또 경상비용 최소화, 지역적 연계 최적화, 생활권 등을 기준으로 3~16개 구로 재편하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본의 도쿄도 역시 옛 도쿄시에서 주변을 통합한 대도쿄시로 확장됐고, 이후 도쿄부를 거쳐 지금의 도쿄도로 개편됐다. 정치적 목적, 전쟁 상황, 자치권 강화 등 다양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로운 체제로 바꿔왔다. 한 때는 효율을 목적으로, 또 다른 때는 분권을 목적으로 행정체제를 바꿔온 셈이다.
하동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본 도쿄도 역시 도와 특별구 관계를 두고 수십년간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통합 논의도 즉흥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체계적인 검토와 사전 준비단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무산위기를 맞은 대구·경북 통합 논의는 정부 주도로 불씨를 다시 살리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김민재 차관보 주재로 20일 오전 대구시와, 오후 경북도와 각각 실무협의를 진행한다. 최근 양측 갈등의 골이 깊어진 탓에 실무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는 않는다. 이철우 경북지사도 19일 간부회의에서 “대구·경북 통합을 위한 양자 협의와 더불어 시도협의회 등 제3자와 함께 조정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