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상인 ‘화폐환산회계 실시’ 첫 입증…전 세계에서 처음
19세기말 회계장부에서 작성 확인 … 상평통보 기준으로 다른 화폐 가치 환산
화폐 주권 상실했는데 회계에서는 통화 지켜 … “식민지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
개성상인의 복식 부기가 서양보다 200년 앞섰다는 연구결과에 이어 개성상인이 ‘화폐환산회계’를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사실이 입증됐다.
23일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경제학과 교수와 허성관 경기연구원 이사장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전 세계적으로 화폐가치 차이를 환산해 회계장부에 반영했다는 연구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다”며 “개성상인들이 처음으로 화폐환산회계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전 교수와 허 이사장은 이달 초 한국회계학회가 발간한 회계저널 8월호에 연구결과를 담은 ‘개성상인 복식부기 장부 화폐환산회계’ 논문을 발표했다.
기업들이 외국 통화로 거래하면 자국 통화로 환산해 기장하는데 이와 관련된 회계가 외화환산회계다. 이번 논문에서는 환산 대상 화폐에 일본 화폐와 자국 화폐인 조선 화폐 당오전이 포함됐기 때문에 ‘화폐환산회계’로 표기했다.
허 이사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에서 화폐환산회계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이 1970년대 후반”이라며 “다국적 기업들이 나오면서 해외 각 지점에서 거래된 금액을 어떻게 환산할 것인지, 환율 적용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본격적으로 화계환산회계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상평통보 기준으로 환산, 일관성 있게 기록 = 이번 연구는 조선시대 개성상인 집안인 박영진가의 장부를 분석한 결과다. 박영진가 장부 기간(1887년 8월 15일부터 1912년 4월 10일) 중 상평통보 이외에 다른 화폐로 거래된 분개는 79건이다. 당오전 5건, 백동화 1건, 은전 44건, 지전 28건 등이다.
이 시기에는 외환시장이 없어서 매일 전국적으로 단일 환율이 존재하지 않았다. 개성상인들은 시장에서 통용된 각종 화폐의 가치를 상평통보로 환산해 기록했다. 당시 환율 관련 용어는 ‘비가’와 ‘가계’다. 비가는 환율이다. 당시 일본화폐 1엔 = 상평통보 5냥이 법정비가였다. 하지만 실제로 1엔=5.5냥으로 교환되면 상평통보 입장에서 0.5냥이 ‘가계’가 된다.
화폐를 환산하면 웃돈을 주거나 받는 가계 형식으로 거래하거나 교환 비율을 적용해 환산하는 경우로 나뉜다. 박영진가 장부에는 교환비율을 적용하면 분개에 ‘교’로 표시하고 가계이면 가계로 분개해 표시했다. 교로 환산한 건수는 29건 중 은전이 7건, 지전이 17건이고, 가계로 거래한 분개 10건 중 은전이 7건, 지전이 3건으로 나타났다. 교환비율과 가계를 함께 적용한 거래도 있었는데 7건 중 은전이 1건, 지전이 7건이다.
허 이사장은 “개성상인들이 일관성 있게 화폐가치를 환산해 기록했다는 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지극히 현대 경영학적 방법으로 경영을 한 것이고, 일제 식민지 이전에 자본주의적으로 경영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평통보는 금속화폐로 1678년 이후로 나라가 정한 국정화폐였다. 하지만 1866년 고종 시절 경복궁 중건으로 궁핍해진 재정을 메꾸려고 당백전 발행이 결정됐다. 6개월간 1600만냥이 주조됐다. 당시 상평통보 유통량이 1000만냥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1.6배의 통화를 더 찍은 것이다. 정부가 정한 명목가치는 당백전 1전이 상평통보 100전과 같다고 했지만, 실질가치는 상평통보의 5~6배 정도였고, 물가폭등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백성을 수탈해 1000만냥 이상의 막대한 주전이익을 취했고, 결국 당백전 유통은 1868년에 중지됐다. 당오전도 같은 취지로 발행됐고 또 다시 물가는 폭등했다.
◆“일제 경제 침탈 속에 민족적 주체성 지켜” = 박영진가 장부기간 1894년 이후 조선에서 통용된 화폐는 상평통보, 당오전, 은표, 조선 은화, 일제 중앙은행이 발행한 은화, 지폐, 동전이다.
1894년 조선은 갑오경장 일환으로 ‘신정화폐발행장정’(장정)을 발표했다. 이후 일제 은화와 고액 지폐가 본위화폐 기능을 수행하고, 백동화와 상평통보가 보조화폐로 통용됨으로써 조선 화폐제도가 일제 화폐제도로 사실상 종속돼 화폐주권이 상실됐다.
전 교수와 허 이사장은 “상평통보는 금속화폐로 거액 거래에 불편했지만 오래 전부터 어음을 이용해 이를 극복했다”며 “개성상인 박영진가가 장부를 상평통보로 기록한 것은 주된 거래 통화가 상평통보였기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겠지만 계속 강화되는 일제 경제 침탈 속에서 민족적 주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전 교수는 “그레샴의 법칙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된다는 것인데, 상평통보를 보면 우리는 오히려 양화를 지켰다”며 “화폐환산회계를 통해 평가 절상이나 절하 등의 환율 개념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잘못됐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현대 한국의 경제적·정치적 성장의 원동력이 일제 식민지 시대를 토대로 이뤄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개성상인 장부를 보면 일제 식민지 이전에 이미 조선에서 자본주의적 경영이 이뤄지고 있었다.
허 이사장은 “개성상인 장부에는 다른 요소들도 많지만 화폐 환산이라는 것은 상당히 자본주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박영진가 장부 이외에 다른 연구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거래가 보편적이었다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후학들이 다른 장부들에 대해서도 탈초(초서로 된 글씨를 읽기 쉬운 해서로 바꾸는 일)를 통해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이사장은 그동안 박영진가 장부를 통해 ‘인삼포 회계’, ‘농업회계’, ‘본지점 회계’, ‘회계용어’ 등의 논문을 작성해 발표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