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위장수사로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 대거 검거

2024-09-23 13:00:01 게재

3년간 1415명 검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판매·배포 1030명 … 신분 숨기고 텔레그램 등에서 수사

#. A씨는 지난 2월 엑스(X·옛 트위터)에 ‘급전 필요하신 분 연락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를 보고 연락한 B양(14)과 C양(17)에게 차용금 담보 명목으로 나체 사진을 전송받아 총 11장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이후 C양이 이자를 갚지 않자 나체 사진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던 A씨는 위장수사에 나선 광주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붙잡혀 구속됐다.

경찰 위장수사를 통해 지난 3년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성범죄 피의자가 1400명 넘게 검거됐다. 경찰은 보안 메신저 등 갈수록 고도화되는 범행 수법에 대응해 위장수사를 성인대상 범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찰 위장수사를 허용하도록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동청소년성보호법)을 적극 활용해 2021년 9월 시행된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총 515건의 위장수사를 실시하였고 1415명(구속 94명)을 검거했다고 23일 밝혔다.

위장수사 수행 건수를 범죄 유형별로 구분하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판매·배포’가 400건(77.7%)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알선 66건(12.8%), 성착취 목적 대화 21건(4.1%), 불법촬영물 반포 19건(3.7%) 순이었다.

위장수사를 활용한 검거 인원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판매·배포가 1030명(72.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시청 169명(11.9%),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알선 149명(10.5%) 등이 뒤를 이었다.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 = 위장수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 대상으로 한다. 경찰안팎에서는 위장수사가 텔레그램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보안 메신저를 이용하는 범죄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사 기법으로 평가한다.

수사 방법과 절차에 따라 경찰관 신분을 밝히지 않거나 부인하는 방식으로 증거 및 자료를 수집하는 ‘신분비공개수사’와 문서·도화·전자기록 등을 활용, 경찰관 외 신분으로 위장해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신분위장수사’로 구분된다.

위장수사는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1~8월 위장수사 건수는 130건으로 전년 동기 123건보다 5.7% 늘었고, 같은 기간 검거 인원도 326명에서 387명으로 18.7% 증가했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은 텔레그램을 이용해 성적 허위영상물(딥페이크)을 판매하거나 구매한 피의자 27명을 위장수사로 검거했다.

10대 판매자 3명(구속 2명)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텔레그램 채널을 개설해 연예인이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영상물을 유료로 구입·시청한 구매자 24명도 불구속 입건됐다.

충남경찰청은 위장수사를 통해 올해 1~2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판매·광고한 28세 남성 피의자를 검거해 구속했다. 경찰은 피의자가 게시한 광고를 발견하고 수사를 본격화해 검거했다. 또 포렌식 분석을 통해 약 1만9000여점(2TB 분량)의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확보했다.

◆성인대상 범죄로 대상 확대 추진 = 경찰 안팎에서는 위장수사를 남용하면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고 과도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경찰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위장수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수사관에 대한 선발·교육 절차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올해 4월 선발된 신규 위장수사관들은 관련 법령과 수사 절차 등을 교육받은 뒤 18개 시·도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과 여성청소년수사팀에 각 1명 이상 배치됐다.

또한 아동청소년성보호법과 시행령에 위장수사 제도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법적 통제 장치가 마련돼있다.

신분비공개수사는 사전에 상급경찰관서 수사부서장의 승인을 받아야 수사 진행이 가능하며 신분위장수사의 경우 검찰의 청구와 법원의 허가를 거쳐야 착수할 수 있다. 신분비공개수사는 국회에 반기별로, 국가경찰위원회에는 수사 종료 시에 관련 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위장수사 관련 절차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경찰청 주관의 현장점검도 진행된다.

올해 상반기 3개 시·도청을 점검한 결과 수사 과정상 위법·남용 사례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경찰청은 밝혔다. 23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추가 3개 시·도청을 대상으로 하반기 현장점검을 할 예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위장수사는 텔레그램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보안 메신저 등을 이용하는 범죄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피의자를 특정·검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사기법”이라며 “위장수사를 활성화해 범행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디지털성범죄 근절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은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현재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로 한정된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로까지 확대하고 사전 승인이 필수인 신분비공개수사에 대해 사후 승인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국회 여가위, 처벌강화 내용 법안 처리 = 한편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23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딥페이크 이용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성폭력방지법 및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법안에는 성 착취물을 이용해 아동·청소년을 협박·강요할 경우 기존 성폭력처벌법보다 더 강하게 처벌하고,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긴급한 수사가 필요할 경우 경찰관이 상급 부서의 사전 승인 없이 ‘긴급 신분 비공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로 명시하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설치·운영 근거 규정을 신설해 불법 촬영물 삭제·피해 예방 업무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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