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넘어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2024-09-23 13:00:01 게재

영풍·MBK 배임 등 혐의 고소사건 중앙지검 공조부 배당

심우정 “수사역량, 경제범죄 집중” … 수사 속도 주목

고려아연과 영풍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검찰이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배임 등 혐의 고소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신임 심우정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경제범죄에 대한 신속 대응을 강조해 검찰 수사에 관심이 모아진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고려아연 계열사 영풍정밀이 영풍 장형진 고문과 사외이사 3인, MBK파트너스와 김광일 부회장을 배임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지난 20일 공정거래조사부(김용식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영풍 장 고문 등은 고려아연 주식을 저가에 MBK파트너스에 넘겨 영풍 법인과 주주들에게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를 받는다.

펌프와 밸브 등을 제조·판매하는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측이 단일 최대 주주로 경영을 하고 있어 영풍측(장씨 일가)이 아니라 고려아연측(최씨 일가) 회사로 분류된다. 영풍정밀은 영풍 주식 4.39%를 보유하고 있어 상호출자금지로 영풍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는 고려아연을 대신해 고소에 나섰다.

영풍정밀은 “영풍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약 33%)을 MBK측에 저가로 넘겨 영풍 주주 등이 재산상 손해를 입게 됐다”며 “‘밀실 공모’로 이뤄진 계약으로 영풍은 손해를 보는 반면, MBK와 김광일 부회장은 이득을 취하게 되는 등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고소 이유를 설명했다. 영풍정밀은 또 “이번 계약으로 영풍은 10년간 고려아연 주식을 제3자에게 처분할 수 없고, 10년 경과 후에 MBK측에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게 한 것 역시 영풍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내용의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측은 특히 영풍의 공개매수 결정과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내이사 2명이 불참한 채 기업 경영과 무관한 사외이사 3명으로만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는 것. 이 과정에서 법적 지위가 없는 장 고문의 지시가 있었다는 게 고려아연측의 판단이다. 실제 영풍 박영민 배상윤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이에 대해 영풍은 보도자료를 내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 등 결정은 적법한 이사회 결의에 따른 것”이라며 “이사회의 구성원은 이사로 이뤄지며 이사회 구성원이라면 사내이사나 사외이사 구분없이 이사로서의 지위를 동등하게 보유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를 저버리고 불법행위를 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임무를 맡긴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는 배임죄는 대표적인 경제범죄에 속한다.

앞서 심 총장은 지난 19일 취임사에서 부패범죄와 함께 경제범죄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중대한 부패범죄와 경제범죄에 적시에 대처하지 못할 경우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면서 “검찰의 직접수사 역량은 헌법과 공동체 가치를 훼손하는 부패범죄, 시장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경제범죄와 같은 중대범죄에 집중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신속한 수사에 나설지 주목된다.

검찰 관계자는 “고소장이 접수됨에 따라 해당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다”며 “사건을 검토해 수사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 장병희·최기호 회장이 공동창립한 영풍그룹은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운영하고 장씨 일가가 영풍그룹 전체와 전자계열사를 맡아 75년간 공동경영을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영풍이 MBK와 함께 고려아연 지분 약 7~14.6%를 주당 66만원에, 영풍정밀 주식을 주당 2만원에 공개매수하기로 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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