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크기도 없는 전자가 자전을 한다고?
물리학자들은 전자를 크기가 없는 입자라고 간주한다. 이론적으로는 수학적인 점으로 취급하고, 실험적으로도 전자가 크기가 있다는 증거는 현재까지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크기가 없는 전자가 ‘자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지구나 팽이처럼 물체가 도는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어떻게 크기가 없는 점이 자전을 할 수 있다는 걸까?
실제로 전자가 스스로 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전하는 물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이렇게 표현한다.야구공의 예를 들어보자. 야구공이 직선으로 날아갈 때 속도와 질량을 곱한 값을 ‘운동량’이라고 한다. 만약 야구공이 제자리에서 자전하면 이와 유사한 ‘각운동량’이라는 크기와 방향을 가진 양을 얻을 수 있다. 전자도 이와 비슷한 고유의 각운동량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스핀(spin)’이라고 부른다.
영어로 spin이 ‘회전’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전자가 마치 자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는 전자의 고유한 양자역학적 성질을 나타내는 용어일 뿐이다. 이는 마치 전자가 질량이나 전하량을 고유의 성질로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양성자나 중성자 같은 입자도 스핀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역시 입자의 고유한 양자역학적 성질이다. 스핀이 0인 입자도 존재하며 입자들이 뭉쳐서 더 큰 입자를 만들면 그 구성 입자들의 스핀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더해지기도 하고 서로 상쇄되기도 한다.
실제 자전하는 게 아니라 자전적 특정 가져
스핀을 가진 입자는 작은 막대자석과 같이 자기장을 가지고 있다. 물질 안에서 입자들의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물질이 바로 영구자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질에서는 각각의 전자와 원자가 가진 스핀이 무질서하게 배열되어 있어 영구자석이 되지 못한다.
스핀의 크기 단위가 1/2ħ인데, 여기서 ħ는 플랑크 상수라는 자연계의 기본상수다. 모든 입자의 스핀은 최소 단위의 정수배 (-1ħ, -1/2ħ, 0ħ, 1/2ħ, 1ħ 등) 값만 가질 수 있다. 입자의 스핀을 표기할 때는 ħ를 종종 생략하기도 한다.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볼프강 파울리가 발견한 배타원리(exclusion principle)에 따르면 스핀이 1/2, 3/2, 5/2 등과 같이 반정수 값을 가지는 입자들은 서로 배타적이어서 같은 위치나 같은 에너지에 존재하지 않으려 한다.
이 배타원리가 물질이 존재하는 이유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고, 원자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산소나 철과 같은 여러 개의 전자를 가지는 원자를 살펴보면 가장 낮은 에너지를 가지는 전자는 두 개뿐이고, 나머지 전자들은 순차적으로 더 높은 에너지 상태에 위치한다.
원자는 일반적으로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으려는 경향이 있지만 두 전자가 특정 낮은 에너지 상태를 차지하면 그 이후의 전자는 무조건 더 높은 에너지 상태로 가야 한다. 스핀 1/2인 전자들이 배타원리에 따라 같은 위치와 같은 에너지 상태에 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자 내부 전자의 에너지 분포가 다양한 성질을 가진 여러 종류의 원소가 존재하게 만든다. 만약 전자의 스핀이 1/2이 아닌 정수값을 가지거나 배타원리가 없다면 우리는 원자에 있는 모든 전자가 같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우주에 살고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다양한 성질을 가진 100여 종의 원소들이 여러 방식으로 결합해 만들어지는 우주의 물질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생명체가 지구와 같은 특별한 환경에서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이다. 원자핵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도 스핀이 1/2이기 때문에 이들도 배타원리에 의해 핵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이들의 스핀이 1/2이 아니라면 우리 우주의 모습은 지금과 매우 다를 것이다.
우주가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유
전자, 양성자, 중성자의 스핀은 모두 1/2이지만 이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원자의 총 스핀은 0, 1, 2 등과 같은 정수 값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원자들이 모두 같은 에너지와 위치에 뭉치는 현상을 ‘보즈-아인슈타인 응축(Bose-Einstein condensation)’이라고 한다. 전자나 양성자에 비해 상당히 큰 원자가 정수 스핀값 때문에 파울리 배타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따라서 같은 위치와 에너지 상태에 모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공로로 코넬 위만 케털레가 200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결국 원자를 이루는 입자들의 스핀이 모두 1/2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 우주가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입자의 자전과 유사한 스핀이라는 간단한 성질이 파울리 배타원리와 만나 이런 놀라운 결과를 빚어낸 것이다. 크기도 없는 전자의 신비로운 양자역학적 ‘자전’이 우리 우주를 지탱하는 근간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