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정말 아이티 이민자들은 개와 고양이를 먹는가

2024-09-24 13:00:01 게재

2주 전 9월 10일 미국 대선 토론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공식적으로 처음 만난 자리였던 만큼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이 토론의 승패를 떠나 가장 큰 쟁점이 되었던 장면은 트럼프가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 지역에 사는 이민자들이 반려동물을 잡아먹고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이었다.

아이티 이민자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은 토론을 전후로 몇몇 저명한 우익 인사들이 소셜미디어에 관련 글을 게시한 이후 더욱 확산되기 시작했다. 극우주의자 중 한명인 찰리 커크(Charlie Kirk)는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를 도살해 먹는다는 익명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스크린 캡처와 함께 X(트위터)에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론 머스크까지 나서서 “이민자들이 애완용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은 ‘이 나라에 살면 안 될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납치해 먹었다는 보고가 있다’는 거짓 주장을 X에 올렸다. 이와 함께 그는 아이티 불법 이민자가 스프링필드 전역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오하이오주가 반려동물 유괴와 식인의 본거지라는 주장은 공화당 후보들에 의해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참고로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를 비롯해 미국 어디에서도 아이티 이민자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사실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해서 흑인이 대부분인 아이티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과 의혹을 부추기는 공화당의 국수주의적 이야기를 막지는 못했다.

대선 토론 후 번지고 있는 이민자 혐오증

또한 스프링필드의 아이티인들은 영주권, 인도주의적 가석방, 임시보호 신분(출신 국가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합법적 이민 신분)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거주하며 일하고 있다. 30만명 이상의 아이티 출신 미승인 이민자들은 올 6월에 임시보호 신분을 받았다. 이는 공화당의 주장과 달리 현재 아이티 이민자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어떤 이유가 됐든 이들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수년 동안 남부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미국 내 이민자에 대한 회의론이 급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미 남부국경에서 이민자가 급증했는데 상당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 때문에 건너온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 스프링필드에 새로 문을 연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2만명에 달하는 아이티인들이 도시에 몰려들었다. 2023년 아이티 이민자 중 하나가 치명적인 버스 충돌 사고를 유발해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신규 이민자와 이 도시의 오랜 거주자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공화당원들은 이러한 상황들을 이용해 바이든의 국경 관련 정책을 공격하고 미국의 국경에 위기가 닥쳤다고 주장했다. 이민자들이 저지른 범죄를 계속 들춰내 국수주의 정서를 부추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티인과 고양이에 대한 근거 없는 인터넷 소문을, 이민자들이 유발한 문제의 ‘증거’로 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조회수 노린 극우 인플루언서의 선동

이렇게 공화당 측에서 아이티 이민자들이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우파 성향의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와 콘텐츠 제작자들은 스프링필드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회수를 노린 이들의 선정적인 동영상과 게시물은 허위사실과 인종차별적 소문을 퍼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9월 10일 공개된 바이럴 동영상에서 유튜브 콘텐츠 제작자 타일러 올리베이라(Tyler Oliveira)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100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데려가는 것을 봤다”고 주장하는 스프링필드 주민을 인터뷰했다. 익명의 이 남성은 그들이 고양이를 데리고 가다가 경찰에게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고 인정하는 장면까지 봤다고 주장했다. 스프링필드 경찰은 이 주장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 없다고 말했지만 올리베이라는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 동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4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언론과 시 당국이 나서 반려동물 식용 주장을 반박하자 보수 정치활동가인 크리스토퍼 루포(Christopher Rufo)는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이민자들이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5000달러의 현상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현상금을 내건 그의 포스팅은 45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며칠 뒤 루포가 찾아낸 것은 스프링필드에서 약 30마일 떨어진 데이턴에서 2023년 흐릿하게 촬영된 그릴 위의 고양이 동영상 하나뿐이었다. 데이턴의 공무원들은 이러한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또한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이민자들이 고양이를 도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페이스북 게시물이 널리 공유되기도 했으나 이 또한 뜬소문으로 밝혀졌다. NBC뉴스에 따르면 해당 게시물을 작성한 사람은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아이티 이민자들이 공원에서 오리를 죽여 먹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한 지역 인플루언서 앤서니 해리스(Anthony Harris)는 이후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시인했다.

보수 인플루언서들이 이렇게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게시물은 그 자체로 선정적이어야 보상을 받는다. 많은 정치 인플루언서들은 콘텐츠에 따라 오는 광고, 구독 또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므로 많은 조회 수를 유도할 수 있는 동영상과 게시물을 제작해야 한다. 많은 조회수를 얻는 것은 직접적인 금전적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구독자를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실 확인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저널리즘 관행을 무시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올리베이라는 자신의 스프링필드 동영상에 ‘수익을 창출하는’ 영상이라는 점을 명시함과 동시에 본인의 후원계정 링크도 함께 게시했다.

공화당의 이민자 공격은 현재진행형

하지만 정치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의 이익과 별개로 스프링필드는 세간의 관심 때문에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아이티 이민자와 관련된 주장이 확산된 직후 신나치주의자들과 극우단체들이 시내에서 행진을 벌였다. 또한 도시 곳곳에서 폭탄테러 위협이 발생해 공공기관에 대피령과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후 트럼프는 폭탄 협박은 묵인한 채 불법 이민자들이 점령한 스프링필드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폭탄 위협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거짓 발언으로 표심을 얻고자 한 것이다.

아이티 이민자들이 애완동물을 납치해 먹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스프링필드를 공포에 떨게 한 지 6일 만에, 밴스는 이 이야기가 특정 서사를 밀어붙이려는 의도였다고 인정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미국인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그는 X에 아이티 이민자와 관련된 게시물을 올린 이후로 ‘물론 이 모든 소문이 거짓으로 판명될 가능성도 있다’고 인정했었다. 그에게는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트럼프와 공화당원들의 지속적인 공격은 더 많은 미국인이 이민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갖도록 유발한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동안 아이티인들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반복해서 주장했다. 그는 또한 스프링필드에 있는 많은 아이티인의 법적 지위인 임시보호 지위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밴스는 스프링필드에 전염성 질병이 증가하고 있다는 글을 X에 올리기도 했다. 공화당의 교묘하고 직설적인 이민자 공격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현재진행형이다.

김찬송 위스콘신대 정치학, 미국 선거·여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