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기후공시 의무화, 더 이상 미루면 안돼
“추석 명절에 배추김치를 못 담근 건 결혼 30년 만에 처음이다.” “시금치 가격 실화? 비싸도 너무 비싸 잡채에 넣지도 못했다.”
사상 처음 9월 폭염경보가 발효된 올해추석 연휴에 만난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한 포기에 2만2000원이 넘는 배추, 한 단에 1만5000원하는 시금치 등 채솟값 폭등에 대해 하소연했다. 인류가 직면한 최대 위기 ‘이상기후’가 우리 생활에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온 모습이다.
연휴 직후 쏟아진 200년 만의 가을 폭우로 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한낮의 기온은 29℃에 육박하며 늦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예측했던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올겨울 ‘역대급 추위’를 예고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이상기후가 올 한 해 끝나는 이례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올해와 같은 긴 폭염과 역대급 추위가 일상화되고, 이로 인한 기후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피해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주요국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강화하며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 등을 의무 공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전세계가 시급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는 한 극단적인 날씨는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19일 네덜란드 아이엔지(ING) 은행은 “2025년부터 새로운 LNG 터미널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대형 고객사 2000곳의 전환 계획을 평가하겠다”는 내용의 탈탄소화 전략 ‘기후 진전 업데이트’를 새로 발표했다. 이렇게 글로벌 금융권의 전환 움직임이 가속화되면 기후변화 대응 역량이 충분한 기업으로만 자금이 쏠리고, 미진한 기업들은 신규 여신과 수출 기회가 막혀버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각국의 ESG 공시 정책은 전세계 투자자의 중대한 관심사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초안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해외 투자자들은 공시 적용 범위, 산업기반 지표,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내부탄소가격, 공시 위치 및 시기 등을 국제지속가능성위원회(ISSB) 기준과 일관되게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재계는 기업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를 2029년 이후로 미루고, 자율공시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제품 생산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산정하는 스코프3 배출량은 의무공시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기후가 심각해지는 상황에 언제까지 기후공시를 미룰 작정인가. 무작정 미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기업들은 기후공시 의무화를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선 안된다.
김영숙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