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컬쳐, 원형에서 미래를 생각한다

2024-09-25 13:00:01 게재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1990년대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는 K-팝, K-영화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어느새 음식문화 만화 패션 뷰티 한글 공예는 물론 사소한 일상생활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문화 콘텐츠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남미 청소년들까지 매료시키며 이를 통해 한국의 위상과 국격이 높아지는 현상은 경이롭다. 백범 김구 선생이 간절히 바랐던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불과 한세기도 지나지 않아 우리 후손들이 성취한 모습을 본다면 참으로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여기실 것이다.

한류 아시아 넘어 전세계 뜨거운 반응

그렇다면 세계가 한류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무에 뿌리가 있듯 한류의 인기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한국 전통문화의 맥을 짚어야 한다. 한국 문화의 근본을 이루는 전통의 뿌리에서부터,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가 지닌 다양성과 유연성에 닿게 된다. 달항아리가 보여주는 담백하고 절제된 한국적 조형미, 좌식문화를 바탕으로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소반, 한복의 백미이자 규방 예술의 극치인 누비옷, 한국적 정서의 공통분모인 아리랑 이러한 것들이 전통문화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와 혈맥에 깊이 새겨져 있는 친숙한 이 문화적 상징들이 모여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풍류와 올곧음, 선비정신, 청렴강직함, 도덕적 실천으로 대표되는 한국문화의 정신적 원천이 바로 이 전통문화의 원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 원형의 힘이야말로 세계를 휩쓰는 한류의 단단한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부터 나는 문화기획자로 국내외 크고 작은 문화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한국 전통문화의 원형이 지닌 힘에 주목해왔다. 특히 지난 8월 파리올림픽 기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기획한 전시 ‘댓츠 코리아(THAT’S KOREA): 시간의 형태'는 그 원형의 힘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부터 현대 작가까지 17명(팀)이 참여해 한국 전통문화의 대표적 원형과 이를 창조적으로 변형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는 '형태의 시작' '오늘의 형상' '원형의 미래'라는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역사적 가치를 품고 시대에 맞게 변화해 온 한국 전통문화의 유연성에 주목했다.

파리의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어를 몰라도 전통문화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그 변화 과정에 깊이 매료되었다. 전시는 2주 만에 4만5000명이 넘는 관람객을 맞이하며 한국 전통문화의 원형이 지닌 강력한 힘을 증명했다.

한류 20년 돌아보며 미래 준비해야 할 때

이제 한류 20년을 돌아보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다.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 감각을 담아 창조적으로 변주해 세계에 선보이는 것은 동시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맡아야 할 사명이다.

필자가 지난 올림픽 전시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곳은 ‘원형의 미래’였다. 그곳에는 최근 작고한 국가무형유산 누비장 고 김해자 장인의 ‘손누비 장옷’이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 장인께서는 한국의 복식문화가 세계에 많이 알려져 누비옷이 글로벌 명품 반열에 오르길 바라셨는데 그러한 날이 곧 멀지 않았음을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다.

세계 인구의 0.7%에 불과한 한국이 일궈낸 ‘0.7%의 한류 기적’은, 원형의 미래를 담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김민경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