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기초지자체 통합논의 곳곳서 진통

2024-09-25 13:00:14 게재

진척없이 찬반 갈등만 부추겨

제3지대 지원·중재 역할 필요

대구·경북을 비롯한 광역시·도 통합논의가 기초지자체인 시·군·구 통합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전북 전주-완주, 전남 목포-신안, 경남 진주-사천 등에서 통합 논의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지역 대부분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찬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지역은 오히려 감정의 골까지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통합 논의를 지원·중재 역할을 할 제3자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경북에서 촉발된 시·도간 행정체제개편 움직임이 시·군·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전북 전주-완주다.

전북 전주-완주 통합 논의는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1997년과 2007년, 2013년 세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완주군민들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두 지역의 통합논의가 반복되는 건 완주군이 전주시를 둘러싼 형태 때문이다. 유사한 형태의 충북 청주-청원 통합이 2014년 성사됐지만 전주-완주는 결국 완주군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네 번째 통합논의는 과거와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통합을 주도했다면 이번에는 시민단체들이 전면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이 주민 서명(완주군민 6152명)을 받아 통합을 위한 주민투표를 요청하는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반대 단체들도 3만여명이 서명한 반대 서명부를 제출하면서 맞섰다. 전주-완주 통합을 공약했던 김관영 전북지사가 나섰지만 아직까지는 반대 군민들의 마음을 열지는 못하고 있다.

경남 진주-사천 통합 논의도 찬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4개월 전 진주시의 일방적 제안으로 시작된 논의다. 추석연휴 직전에는 진주시 시민통합추진위원회가 주민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통합 당위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진주시민 78.8%, 사천시민 57.5%가 통합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과정 없었던 만큼 진척 없이 논란만 증폭되고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도 “진주시민과 사천시민이 결정할 문제”라며 한 발 물러섰다.

일방적 통합 추진은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왔다. 경남도 주도로 두 지역의 공동 소각장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데 통합 논의로 깊어진 갈등이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전남 목포-신안은 실무 논의가 이어지면서 불씨가 아직 살아있는 지역이다. 양 지자체는 오는 10월 14일 통합을 위한 상생협력과제를 논의할 실무협의체 2차 회의를 열기로 했다. 두 지역 부단체장을 대표로 한 실무협의체는 지난 3월 첫 회의 후 7개월여만에 열린다. 양측은 이 회의에서 16개 상생협력과제에 대한 추진계획과 이행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통합을 위해 넘어야 할 긴 여정의 1차 관문이다.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고 11월쯤 통합을 위한 공동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야 사실상 통합 절차가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인천에서는 자치구간 통합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만 2개 자치구 신규 설치와 함께 이뤄지는 일이라 다른 지자체 통합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인천시는 최근 인구증가 등으로 변화된 행정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서구에서 검단구를, 중구에서 영종구를 분리해 설치하고 중구의 남은 지역과 동구를 통합해 제물포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논의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기존 행정체계를 흔들어 새로운 행정수요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시·군·구간 통합논의가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좋은 선례가 되기 위해서는 통합 논의를 지원하고 중재할 제3지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오랜 기간 독립적으로 운영돼온 지자체를 통합하려다 오히려 두 지역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생산적인 논의를 도와줄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통합 논의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모으려면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전국적인 통합논의를 하지 않을 거라면 행안부나 지방시대위원회에 상시적인 통합 지원창구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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