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메카산업’ 육성에서 출로가 열릴 수 있다
서울공대 교수들이 공동집필한 ‘축적의 시간’은 중국을 상수로 상정하고 한국 산업의 미래를 모색한 책이다. 중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세게 추격하는 상황에 비추어 한국 산업의 생존전략을 탐색하고 있다. 그래서 궁금했다. 지난 몇년 동안 중국은 이중봉쇄를 경험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많은 도시를 통째로 봉쇄했고, 거의 동시에 미국의 강력한 경제봉쇄를 겪었다. 과연 이중봉쇄 속에서 중국 산업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을까?
결과는 정반대임이 드러났다. 중국 기업들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고강도의 혁신을 거듭했다. 미국이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강해졌다. 산업 경쟁력은 비약적으로 강화되었다. 최근 한 언론사의 심층취재 결과는 놀라웠다. 반도체를 제외하고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서고 있음이 드러났다. 반도체마저 안전지대가 아니다. 중국은 인공지능(AI) 칩 필수 요소인 고대역 메모리칩(HBM) 2세대 제품양산에 돌입하면서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AI 로봇에서 산업용은 몰라도 가정용에서만큼은 중국보다 앞서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마저 착각임이 드러났다. 얼마 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는 액면 그대로 중국의 독무대였다. 중국은 참가기업체 수에서 압도했음은 물론이고 기술력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중국은 더 이상 한국 기술을 베끼는 짝퉁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LG전자 조주완 사장 말대로 중국은 더 이상 폄하 대상이 아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혁신동력 살리려면 개방적 혁신 재추진해야
단순기술 경쟁만으로는 중국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기술력은 여전히 필수조건이지만 틀 자체를 완전히 바꿀 정도의 혁신경쟁 창조경쟁만이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기업들은 길을 찾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 경제의 혁신동력은 매우 취약해져 있다. 해 오던 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입증하는 현상이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혁신적 발전 전망이 흐릿해 보이니 주가상승 기대도 약하다. 투자자들은 투자가치가 적은 한국 주식 매수를 꺼렸고 그러다 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
가던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오던 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몇십년 동안 한국의 재조업은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제조업 자체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지만 신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IT산업과의 창조적 융합을 통한 개방적 혁신의 결과이기도 했다.
다시금 개방적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선도할 신성장 동력은 한국이 특유의 강점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하는 한편 중국이 쉽게 넘볼 수 없는 분야여야 한다. 해답으로서 한류 바람이 불고 있는 세 산업 분야가 있다.
먼저 잠재력이 충분히 입증된 K-컬처가 있다. K팝을 선두로 영화와 드라마가 질주하고 있다. 또 하나로 의료산업을 들 수 있다. 한국은 고난도 시술 등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면서 코로나 이전 외국인 환자수가 수직상승을 기록해왔다. 더불어 K-뷰티를 들 수 있다. 미용 기구와 다양한 기능의 화장품은 세계인의 호평과 함께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서울은 패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컬처 의료 뷰티 세 분야는 모두 한국이 세계의 메카로 부상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한 산업들이다. 하나로 묶어 메카산업이라 명명해도 손색이 없다. 메카산업이 명실상부한 신성장 동력으로 부상하면 기존 IT산업과 제조업 역시 개방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발전을 구가할 수 있다.
컬처 의료 뷰티산업과 제조업의 창조적 융합
자본 투자력, 인재풀, 빅데이터 확보 등 객관 전력에서 절대 열세인 한국 기업이 범용AI에서 미·중 기업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메카산업과의 유기적 협력을 바탕으로 특정 분야에 특화되고 최적화된 AI 역량을 갖춤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제조업 역시 메카산업과의 창조적 융합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가령 자동차 산업은 건강에 좋고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하면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차를 선보일 수 있다. AI시대 대세가 될 고객 맞춤형 생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