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부채 급증…트럼프·해리스 외면
WSJ “적자 책임 있는 두 후보, 값비싼 공약 경쟁” … 누가 당선돼도 현추세 되돌릴 가능성 낮아
미국의 올해 예산적자는 1조90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어설 전망이다. 제2차세계대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만 도달했던 한계치다. 연방정부 부채는 28조달러를 넘어 GDP에 육박한 상황이다. 올해 이자비용은 8900억달러로, 연간 국방비 8500억달러를 초과할 전망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34년 미정부 총부채가 22조달러 더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중순 ‘이 때문에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일부 국채경매의 수요 부진 등 경고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났다’며 ‘하지만 올해 11월 대선에 나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적자와 부채를 이따금 언급할 뿐이다. 문제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값비싼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팁에 대한 면세, 사회보장 혜택에 대한 소득세 폐지, 초과근무수당에 대한 세금 폐지, 미국 내 제조기업에 대한 세율 인하, 자녀양육 비용 공제 신설을 약속했다. 트럼프 1기 감세 연장을 위해 4조달러에 2조달러 이상의 감세 혜택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해리스 역시 감세 연장은 물론 신생아 부모에 6000달러 제공 등 자녀 세액공제 확대를 공약했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와 재정적자는 여러차례 위험선을 넘어섰지만 우려했던 결과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최소한 2022년까지 금리는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기축통화다. 미국은 다른 주요 국가보다 훨씬 더 많은 재정운영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위험은 있지만 재정위기는 없었다.
오히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대규모 차입은 경제를 떠받쳤고,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은 재정적자를 우려하지만 감세와 경기부양책, 군비증강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을 더 선호한다. 미하원 예산위원장인 공화당 조디 애링턴 의원은 “역사상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지출과 적자, 부채를 통제했다고 상을 받은 대통령은 없다”고 말했다.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와 해리스 누가 당선되든 2가지 큰 재정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하나는 내년 중반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인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시험대는 2017년 감세안의 상당부분이 곧 만료된다는 점이다. 미의회가 2025년 말까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미국인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이는 양당 모두가 원치 않는 적자감축 방법이다.
트럼프 vs 해리스의 유산과 전망
트럼프와 해리스 모두 재정적자를 초래한 행정부 일원이었다. 2016년 대선에 나선 트럼프 후보는 “8년 내 정부부채를 모두 갚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그는 정반대로 나아갔다. 15조달러를 밑돌았던 부채는 트럼프 퇴임 당시 21조달러 이상으로 늘었다. 그중 일부는 기존 추세와 팬데믹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트럼프는 연방 차입금을 늘리는 2가지 주요 결정을 내렸다.
공화당은 오랫동안 사회보장책과 의료보험 혜택을 축소해 재정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중산층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혜택 유지를 주장하는 민주당 입장을 수용, 미의회의 혜택삭감 논의를 중단시켰다.
트럼프는 2017년 향후 10년간 재정적자를 1조5000억달러 늘리게 될 감세 및 일자리법안에 서명했다. 또 팬데믹이 시작되자 트럼프는 결국 경기부양책, 실업수당 강화 및 기타 구제책을 제공하기 위해 부채를 3조달러 이상 추가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은 또 다른 경기부양책과 주·지방정부 지원 등 1조9000억달러 규모의 미국구조계획으로 트럼프 정부의 팬데믹 지출을 확대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로 통과된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안은 당초 예산적자를 줄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전기차 세액공제를 포함한 주요 세금공제 추정치가 증가함에 따라 예상 감소액은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싱크탱크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해리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1조달러 이상의 지출을 늘리는 ‘대학생 학자금 부채 탕감’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현재 이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부채를 탕감할 수 있는지를 가리는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상황의 전개는 의회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공화당이 하원과 상원도 장악한다면 트럼프 첫번째 임기중 부채와 적자 증가의 흐름과 유사할 수 있다. 전 하원 공화당 보좌관으로 현재 투자은행 파이퍼 샌들러에서 일하는 돈 슈나이더는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 아래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지출을 삭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공화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에서 “부채를 갚기 시작할 것이며 세금도 더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부채를 갚으려면 미국이 대규모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해야 하는데 감세는 그 반대방향으로 작용한다. 낮은 세율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일부 세원을 창출할 수 있지만, 세수 손실을 상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민주 공화 양쪽의 경제학자들은 지적한다.
트럼프는 2025년 말 만료되는 2017년 감세법안을 연장하고 21%의 법인세율을 20%로,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15%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근로자의 팁이나 초과근무수당, 퇴직자의 사회보장혜택에 대한 세금을 없애겠다는 트럼프의 최근 공약은 연방정부 재정에 더 큰 구멍을 낼 전망이다. 그는 또 이민자 대량추방 정책과 미국 미사일 방어시스템 등 상당한 신규 예산지출을 수반하는 다른 공약도 내놓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하원이나 상원을 장악할 경우 트럼프의 공약이 어긋날 수 있다. 상원 예산위원장인 민주당 셸던 화이트하우스 의원은 “트럼프 감세안이 전부 연장되면 대기업과 고소득·고액 자산가들에 편중된 혜택이 더 편중된다. 연방정부부채가 4조6000억달러나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 몇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청정에너지 보조금을 폐지하고 미국의 수입품에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물품에 10~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60% 이상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장담했다. 싱크탱크 ‘조세정책센터’는 수입관세 인상이 시행되면 향후 10년간 약 2조8000억달러의 세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해리스 후보는 2021년 시행된 아동 세금공제를 부활 및 확대하고 첫 주택 구매자를 위한 새로운 보조금을 제공한다는 등의 공약을 내놓았다. 반면 부자와 기업에 대한 세금인상, 처방약 가격책정을 통한 의료보험 비용 절감 등으로 향후 10년간 3조달러 적자를 감축한다는 바이든정부의 기조를 이어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방안에 2가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부자증세만으로는 공약으로 예상되는 예산지출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민주당이 하원과 상원을 모두 장악하는 희박한 가능성을 상정하더라도 민주당 내 증세에 반감을 가진 의원들의 반란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중도성향 민주당 상원의원들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세금인상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미국 부채, 지속가능할까
미국정부는 올해 세수 1달러당 1.21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부채에 지급하는 이자를 포함하면 1달러를 벌어들이면서 1.39달러를 쓰고 있다.
시장이 이런 상황을 계속 허용할지 아니면 반란을 일으킬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정부는 약 1년 전 전문가들 예상보다 더 큰 폭으로 차입금 전망을 상향조정했다. 이 때문에 미국채 금리가 상승했다. 국채경매는 여러차례 수요 부족 상황을 맞았다. 3대 신용평가사 중 2곳이 미국 신용등급을 낮췄다.
피치레이팅스의 수석 미국애널리스트 리처드 프랜시스는 “큰 폭의 적자와 높아지는 부채 수준, 이자부담 증가라는 3대 요인이 겹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WSJ는 “미국의 부채와 적자가 계속 증가하면서 임계점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어느 시점에서는 치솟는 이자비용이 정부를 제약할 수 있다. 어느 시점에서는 미국채 투자자들이 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 언젠가는 미국이 돈을 빌리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