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 앞세워 한국조선산업 '손짓'
HD현대·한화, 경쟁 치열
해외언론도 새 흐름 주목
미국이 해군 함정을 앞세워 한국의 조선산업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의 해양굴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이 해운·조선분야 공급망 재편과 북극전략 강화를 주축으로 한 새로운 해양전략을 추진하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내일신문 6월 28일자 ‘미국 해운·조선재건 움직임…해양력 쇠퇴에 위기감 고조’ 기사 참조)
29일 HD현대와 한화오션은 미 해군과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5분 간격으로 잇따라 발표했다. 미 해군 토마스 앤더슨 제독(소장), 윌리엄 그린 제독(소장) 등이 27일 각각 자사를 방문해 함정산업과 관련해 협의한 내용이다.
HD현대는 미 해군의 함정 사업을 총괄하는 고위 관계자들과 주한미대사관 고위급 인사들이 경기도 판교의 HD현대 글로벌연구개발센터(GRC)를 방문, 미래 함정 및 친환경·디지털 선박 분야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토마스 앤더슨 소장은 미 해군 함정프로그램 총괄 책임자이고, 윌리엄 그린 소장은 미 해군 지역유지관리센터 사령관으로 수상함 유지·보수·운영(MRO 사업 총괄책임자다.
토마스 앤더슨 소장은 지난해 2월 울산 HD현대중공업을 방문, 건조 중인 정조대왕함과 충남함 등 최신예 함정들을 살펴보며 HD현대의 함정 건조역량을 확인한 바 있다.
7월에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가 울산 HD현대중공업을 찾아 함정사업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은 같은 달 HD한국조선해양과 미국 미시간대학교, 서울대와 한·미간 ‘조선산업 인재육성을 위한 교육협력 업무협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HD현대에 따르면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대표와 장광필 HD한국조선해양 미래기술연구원장은 이들을 맞아 디지털융합센터와 디지털관제센터 등을 소개하고 HD현대의 친환경, 디지털 선박 분야 세계 1위 첨단 기술력에 대해 브리핑했다. 특히,인공지능(AI) 기반 함정 솔루션과 하이브리드 전기추진 선박, 디지털트윈 가상 시운전 등 함정 기술개발 역량과 중점 연구개발 분야를 설명하고, 해외 함정에 대한 MRO 전략을 제안했다.
한화오션도 27일 엔더슨 제독과 그린 제독 일행이 한화오션 성장동력의 산실인 시흥연구개발캠퍼스를 방문, 초격차 기술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함정 MRO사업을 수주하며 물꼬를 튼 이후 미국 해군과 협력 가능 분야를 확대하기 위한 교감을 강화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8년 개소한 시흥연구개발캠퍼스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동수조와 예인수조, 방산기술력의 정점으로 꼽히는 음향수조 등 최고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화오션에 따르면 이날 미 해군은 연구개발시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한 잠수함용 리튬이온 에너지저장장치(ESS)에도 관심을 보였다.
김희철 한화오션 사장은 “미국 해군의 시흥연구개발센터 방문이 미국 해군의 MRO사업은 물론 향후 함정 건조에 필요한 기술적 교류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국 해군과 한국 조선산업의 협력은 미국에서도 관심이 크다. 블룸버그는 21일 “미 해군이 중국의 해양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 조선소와 협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국의 한화오션과 라이벌인 HD현대중공업과 협력을 주목했다.
보도에 따르면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7월 의회 상원 위원회에 출석해 “미국과 중국의 조선 분야 차이를 보면 매우 우려스럽다”며 “우리는 이 분야에서 더 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21세기에 필요한 위대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블룸버그는 한화 및 기타 아시아 기업의 지원이 있더라도 미국이 중국의 해양굴기에 대응할 정도로 조선산업을 개선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진단도 덧붙였다. 지난해 중국은 1794척의 대형 상업용 선박을 발주했고, 한국은 734척, 일본은 587척을 주문했다. 미국은 5척에 불과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