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헌법상의 영토조항을 폐지해선 안되는 이유
현행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우리의 헌법·법률은 휴전선 이북지역에도 적용되고 우리의 주권과 통치권도 여기에 미친다. 그러나 사실상 휴전선 이북지역은 ‘북한 괴뢰집단이 점령한 미수복지역’이고, 따라서 북한정권은 대한민국의 통치권 행사를 방해하는 ‘반(反)국가단체’가 된다.
헌법 제정과정에서 초대 국회 내 헌법기초위원회는 공동안을 약간 수정해 이 영토조항을 확정했고 국회 본회의도 수정없이 통과했다. 대한민국이 정부수립 직후 유엔총회에서 승인받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유일합법정부론,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론 등이 근거였다. 그 후 영토조항은 제헌헌법은 물론이고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변경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유보론’과 한반도 ‘두 개의 국가론’을 제안하면서 헌법상의 영토조항을 폐지하든지 개정하자고 주장해서 논란이 일었다. 이 주장은 영토조항이 ‘두 개의 국가론’과 상충된다고 본 것 같다.
유엔 동시가입 후 영토조항 폐지론 대두
물론 영토조항 폐지론이 대두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7년 현행헌법으로 개헌이 이루어지면서 헌법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 평화통일조항이 신설된다. 3년 후인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이듬해인 1991년에 남북 간에 북한정부를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하는 남북합의서가 상호 교환된다.
그리고 같은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도 이루어지는데 유엔헌장은 유엔의 회원을 ‘회원국’으로 표현하므로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은 국제법적으로 국제사회가 대한민국과 함께 북한 ‘정부’를 ‘국가’로 인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국제법학자들의 해석이 뒤따랐다.
국내외 정세가 이렇게 급변하자 일부 헌법학자들 사이에 북한을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하는 현실에서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이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조항과 상충되고 통일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독소조항이라는 견해가 대두되면서 영토조항 폐지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북한정권의 이중적 성격론’이라는 다소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여러 판결들을 통해 영토조항을 근거로 북한을 기존과 같이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면서도 평화통일조항을 근거로 북한을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본다고 판시해오고 있다.
그후 헌법학계에서는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제4조의 평화통일조항을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하면 두 조항이 상충되지 않고 오히려 조화적 관계에 있다는 주장이 대두했고 유력설이 되었다. 이 주장은 1948년의 헌법 제정 과정에서도 대한민국 영토를 38선 이북지역까지 포함하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기초위원회의 제헌헌법 초안에 대해 국회 본회의에서 논란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결국 38선 이북지역을 하루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의미를 살리면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점을 선언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영토조항이 제헌헌법에 규정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영토조항의 연혁적 의미를 고려해 봤을 때 영토조항은 북한지역에 대해 주권적 권력을 실현할 책무, 즉 ‘통일의 책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의 ‘통일’은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영토조항은 평화통일조항과 조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즉 영토조항은 ‘통일의 책무’를 부과한 조항이고 평화통일조항은 그 통일의 내용이 ‘평화통일’임을 선언한 조항이라는 해석이다.
영토조항과 평화통일조항은 조화적 관계
헌법상의 영토조항은 시대와 정치상황 변화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평화통일조항이 추가된 1987년 개헌 이후의 영토조항은 이렇듯 평화통일조항과 조화적 관계에 있다고 보는 헌법해석에 동의한다. 흡수통일이라는 대결적이고 갑작스런 통일을 지향하는 통일정책을 펴기보다는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조항이 규정한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 평화적이고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뤄가는 정책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통일은 우리 헌법이 직접 규정한 헌법적 과제다. 현실이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유보할 대상이 결코 아니다.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조항과 함께 ‘통일의 책무’를 우리에게 부과한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폐지해서는 안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