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의 비철금속 회사가 사모펀드의 손에 넘어간다면?
중국계 자본이 섞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추석연휴 직전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를 기습적으로 선언하면서 엄청난 파장이 일고 있다.
고려아연의 사업장이 있는 울산시의 김두겸 시장은 즉각 성명서를 내고 “120만 울산시민과 함께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업간 갈등이 아니라 국가기간산업의 미래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며 사모펀드의 공개매수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모펀드의 움직임을 계속 추적해온 박희승 의원은 “사모펀드의 고려아연에 대한 약탈적 인수합병을 반대한다”는 긴급 보도자료까지 냈다.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을 비롯한 일반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외환위기 직후 온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그간에도 MBK를 비롯한 사모펀드들의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행태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에 특히 파장이 더 큰 것은 고려아연의 특수성 때문이다. 1974년 설립돼 지난달 창립 50주년을 맞은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분야 세계 1위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제련업을 바탕으로 96분기(2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글로벌 공급망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알짜 중의 알짜 기업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모펀드의 기습은 단순한 기업 경영권 분쟁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 방향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워낙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국제신인도도 상당하다. 최윤범 회장은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호주 퀸즈랜드의 아연제련소 썬메탈(SMC) 사장으로 재임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친환경 아연 제련공법을 개발하고, 태양광, 그린수소, 풍력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지금도 퀸즈랜드 주정부는 물론 호주 연방 정부와 한국 사이에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MBK 측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계 펀드 및 고려아연 해외 매각에 대한 세간의 우려에 대해 중국계 비중은 5% 안팎이며 국내 기업에 매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만한 큰 기업을 살 대기업이 사실상 없을 뿐 더러 이미 고려아연은 현대자동차, LG, 한화 그룹 등 대기업들과 사업적으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MBK의 고려아연 경영진을 겨냥한 비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MBK와 손잡고 적대적 M&A를 추진하고 있는 영풍과의 실적만 비교해도 그렇다. 동일한 비철금속 제련업인데도 고려아연과 영풍은 지난 10년간 성장성, 수익성, 안전성에서 무려 2~8배의 차이를 보였고, 갈수록 그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적대적 M&A에 추석 연휴 동안에도 정치권, 지자체, 협력사, 근로자, 해외에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다.
MBK가 운영하는 다른 블라인드 펀드 상당수에 중국계 자본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찜찜하다. MBK가 목표로 삼은 14.6%의 지분만 확보해도 영풍과의 약정에 따라 영풍보다 1주가 더 많은 최대주주가 된다. 이렇게 적은 지분으로 일거에 최대주주 자리를 꿰찬 뒤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면, 그간의 행태를 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세계 최고 기술의 유출,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 임직원의 눈물과 땀에 힘입어 오로지 기술력 하나로 세계 1위에 올라선 기업, 지난 50년동안 대한민국의 발전과 함께 해온 자랑스러운 <국가대표기업>인 고려아연이 일개 사모펀드의 먹이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는다.
노현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