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필리핀 원전시장에 진출하려면

2024-10-04 13:00:04 게재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에너지 확보, 특히 인공지능과 전기차 확대로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국가들이 원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력난을 겪고 있는 필리핀도 그중 한 나라다. 필리핀정부는 에너지 수요 증가와 국제 유가의 불안전성에 대비해 1980년대에 바탄지역에 원전 2기를 건설했지만 1986년 체르노빌 사태로 인한 안전성 문제와 함께 당시 정부에서 각종 부패 사건이 터지며 원전 운영 방침을 중단했다.

그후 필리핀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석탄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원전 등 대체 에너지 개발로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2050년까지의 필리핀 에너지 계획에 원자력을 포함시켰다.

한국과 필리핀은 2022년 11월 캄보디아, 2023년 9월 인도네시아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공급망, 방산 분야뿐만 아니라 바탄원전 건설 재개 등 원전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더욱 강화해나가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필리핀 측은 바탄원전 건설 재개 관련 기술 타당성 검증 수행 등에 있어서 한국측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우리측은 우수한 원전건설 및 운영기술을 바탕으로 적기 준공능력을 보유한 한국이 최적의 협력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적극 원전협력 나서는 점 주목해야

필리핀이 원자력에 주목한 가운데 필리핀과 반중국 연대를 표방하는 미국이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23년 11월 17일 미국과 필리핀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샌프란시스코에서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체결식에 참석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2032년까지 원자력이 필리핀 ‘에너지 믹스’의 일부가 될 것”이라며 “원자력은 필리핀과 미국의 동맹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미국은 6월 동남아시아 민간 원자력산업 실무그룹 본부를 마닐라에 설립했는데 업계가 주도하는 이 실무그룹은 필리핀 파트너를 미국 기업과 연결하고 안전한 원전으로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세계적인 기술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미국과 필리핀은 이번 합의를 토대로 오는 11월 마닐라에서 첫 원전공급사 포럼을 개최해 양국 원전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고 구체적인 협력을 모색할 예정이다.

미국이 필리핀 원전시장에 진출하려는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과 필리핀 정상회의를 통해 원전협력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양국정상은 수교 75주년을 맞는 금년이 양국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데 공감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을 포함해 양국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번 윤 대통령의 필리핀 방문을 계기로 원전을 포함한 양국간 실질적인 협력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원전협력과 더불어 방산 분야와 산업협력 방안도 같이 강구해야 한다. 필리핀은 한국전 당시 7420명을 파견했고 경전투기(FA 50) 12대와 구축함과 호위함 각각 2척을 구입한 우리의 중요한 방산 협력 파트너이므로 필리핀이 원하는 해양안보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원전 협력을 단기적인 상업적 목적으로만 추진할 것이 아니라 자동차 조립공장과 반도체 공장 등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디지털 경제로 전환을 지원하는 등 종합적인 산업협력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

필리핀 원전 기술자의 역량강화를 위한 산학협력도 강화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필리핀 원자력 전문가들에 대한 연수와 원자력 전공 대학원생을 장학생으로 유치해 전문가로 양성하고 나아가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원전시장 진출을 위해 실질적인 원전 동맹국으로 미국과 전략적 제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시아 원전시장 진출의 교두보 가능성

필리핀이 원자력을 장기적 에너지문제 해결 방안으로 새롭게 주목하면서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태국정부는 국가에너지계획(2024~2027)에 소형모듈원전 도입을 포함시켰고 베트남정부도 에너지안보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원전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가 필리핀 원전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 동남아시아 원전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의 저탄소 녹색경제에도 도움이 되므로 필리핀을 포함한 아세안 원전시장에 좀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정책과 더불어 동남아국가로부터 신뢰를 얻는 상생전략도 함께 추진할 때다.

한동만 연세대 초빙교수 전 필리핀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