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시 기후재앙에 ‘빗물세’ 만지작

2024-10-04 13:00:05 게재

지난 여름 100년 빈도 집중호우에 두차례 피해 … 도시인프라 재구축 프로젝트 검토

캐나다 최대도시 토론토시가 빗물세 도입을 다시 추진한다. 당초 2027년 시행할 예정이었던 빗물세는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지난 4월 올리비아 차우 토론토시장이 직접 나서 논의 중단을 지시했었다. 하지만 지난 여름 잇따른 폭우 때문에 정전과 홍수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등 큰 피해가 반복해 발생했고, 기후변화 대응책의 하나로 빗물세 도입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빗물세는 1990년대 독일에서 먼저 도입한 제도로 콘크리트 포장도로 등 불투수(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면적 때문에 발생한 하수처리 비용 부담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시스템이다. 토론토시는 빗물 때문에 발생하는 하수관리비용 3억8500만캐나다달러(이하 달러, 약 4000억원)를 총 불투수성 표면적(2만2857헥타르)으로 나눠 ㎡당 1.68달러씩 2027년부터 부과할 예정이었다.

토론토의 주요 간선도로인 돈밸리 파크웨이가 7월 폭우로 침수돼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100년 빈도 집중호우 10년 사이 세 차례

토론토시가 빗물세를 비롯한 기후변화 대응정책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올해 유난히 기상 관련 재난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7일 광역토론토 일부 지역에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시간당 최대 40㎜ 등 불과 4시간 사이에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피어슨국제공항의 일부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고, 주요 간선도로가 마비됐다. 1991~2020년 사이 토론토의 30년 평균 8월 강수량은 68.5~71.9㎜ 정도다. 그러나 이날 한달치 강수량보다 많은 비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내린 것이다.

앞서 7월 16일에도 지역에 따라 110㎜ 가까운 비가 내렸다. 주요 도심을 통과하는 고속도로가 침수됐고 중앙역인 유니언역 안에도 빗물이 바다를 이뤘다. 17만가구에 전력공급이 끊겼으며 시청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긴급전화가 3000통 넘게 걸려왔다. 기상청은 토론토에 100년 빈도로 내릴 수 있는 집중호우가 최근 10년 사이에 3번이나 쏟아졌다고 밝혔다.

캐나다 연방환경부의 기후학자 데이비드 필립스 박사는 CTV와 인터뷰에서 “올해 유난히 폭우 피해가 컸던 것은 기후변화에다 불운까지 겹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많은 습기를 머금은 공기층이 토론토 상공을 잇따라 관통하면서 한꺼번에 집중호우를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 잇따른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자 토론토시의 기후재난 대비 태세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토론토에 지역구를 둔 아흐메드 후센 연방의원은 “락클리프(Rockcliffe-Smythe) 지역의 주택 수백채는 해마다 침수 피해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수차례 나왔다”면서 “기후변화 때문에 홍수가 더 자주, 더 극심하게 발생한다. 위험이 커지는 만큼 대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토론토시가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7월의 폭우로 토론토와 온타리오 남부 일부 지역에서 약 9억4000만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지금 집중호우에 대한 피해방지 대책 수립에 나서지 않는다면 나중에 감당해야 할 복구와 보상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토시는 우선 락클리프 지역 피해자들에게 7500달러가량의 수해 복구비를 지급했다.

토론토시 고위 관계자는 “시민들이 우리의 홍수 대비가 미흡하다고 느끼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시민들이 집중호우 때마다 피해를 겪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폭우 때마다 주요 간선도로가 침수돼 도시교통이 마비된 것과 관련해 “앞으로 좀더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주요 데이터를 훑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세웠던 계획도 흐지부지

토론토시는 먼저 올해 큰 침수 피해를 잇따라 겪은 락클리프 지역에 3억3000만달러(약 3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인프라 개선에 나선다고 밝혔다.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한 준설과 제방 확충에 들어간 것이다. 토론토시와 연방정부는 이 지역에 2018년 이후 4000만달러를 투입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올리비아 차우 토론토시장은 이 지역의 하수도 시스템을 손보는 데도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토론토시는 공사 시행을 위한 설계를 진행 중이며, 2032년쯤 인프라 개선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토시의회는 이와 별도로 토론토 전역에 대한 홍수 대비 전략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빗물세 도입도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 가운데 하나로 재논의되고 있다. 기후대책 시행을 위한 재원 마련 차원이다. 일단 시민들의 반발과 조세부담을 의식해 대규모 쇼핑몰이나 상업용 건축물에만 부과하는 쪽으로 방향을 좁혔다.

토론토 전체로 보면 집중호우 대책은 두 갈래로 추진된다. 하나는 지하실 침수 방지대책이며, 다른 하나는 주요 하천과 다운타운 워터프런트 인프라 개선이다.

전문가들은 토론토시가 침수 피해 방지에 수십억달러를 지출하고 있지만 최소 수십억달러를 더 지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내년도 예산안을 짜고 있는 올리비아 차우 시장은 “이제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다”면서 “홍수방지 대책을 더 강하게, 폭넓게 수립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홍수 대책의 상당 부분은 100년 이상된 토론토의 하수도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겪은 2차례의 침수처럼 한꺼번에 밀려드는 빗물하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같은 피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 언론은 토론토시의 재난 대비책이 실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한다. CBC뉴스는 “2013년 100㎜ 안팎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시가 마비되는 피해를 입었고, 그 당시에도 재난 대비 프로젝트 31개를 선정했었다”면서 “문제는 번듯한 계획이 아니라 예산을 확보해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토론토시의회에 제출된 보고서를 보면 재난 대비 프로젝트 가운데 대부분은 연구단계이거나 착공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가 선정했던 모든 대책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186억달러(18조6000억원)가 집행되어야 하지만 토론토시가 그동안 인프라 구축에 쓴 예산은 11억달러에 불과했다.

재난보험 보상액도 큰 증가 추세

토론토시의 면적은 630㎢로 서울시보다 약간 넓다. 인구는 280만명인데, 위성도시를 합치면 700만명가량 된다.

토론토시가 집중호우에 잇따라 큰 타격을 입는 것은 평평한 도시 지형 때문이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 해발 209m에 불과하다. 온타리오 호수를 끼고 있으나 도심을 관통하는 대규모 하천은 없다. 때문에 단시간에 집중호우가 내리면 빗물이 빨리 빠져나가지 못하는 배수 문제를 겪게 마련이다. 다운타운을 비롯한 구도심의 하수도 시스템은 100년 가까이 돼 낡을 대로 낡았다.

최근 캐나다보험국에 따르면 2022년과 2023년, 보험업계는 극단적인 날씨와 관련해 연간 30억달러 이상을 보상했다. 2010년쯤 기후재난과 관련한 연간 보상액이 7억달러였던 것을 고려하면 불과 10여년 사이에 4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보험국은 올해 토론토가 입은 집중호우 피해를 9억4000만달러(9400억원) 정도로 추산했다. 해마다 봄이면 대형 산불까지 잇따르면서 캐나다의 주택 소유자들은 기후재난과 관련한 보장성 보험을 점점 더 추가하는 추세다.

보험업계 관계자도 “10여년 전만 해도 기상재해와 관련한 약정을 추가하는 사례가 드물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더 많은 보험사들이 이와 관련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출시돼 있는 주택보험은 강의 범람 등에 따른 침수피해는 보상하지만 하수구 역류로 인한 지하실 침수 같은 피해는 특별옵션이 없으면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부 보험사는 침수피해가 잦은 지역 주민들의 가입을 잘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예 보험에 가입할 수 없거나 몇 배나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결국 국가가 보험료의 일정 부분을 부담하는 홍수보험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현실적 과제가 됐다”면서 “모든 주택 소유자가 위험에 관계없이 가능한 저렴하게 홍수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