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립한글박물관, 10년 회고와 100년 전망
매년 이맘때면 책장 위에 놓아둔 조선어학회 십일동지회(1942.10.1.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신 분들) 22분의 흑백사진을 올려보며 스스로를 경책하는 일이 통과의례가 되어버렸다.
2010년 국립한글박물관의 탄생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0년, 필자는 어렵사리 국립중앙박물관 1층의 조선시대 전시실 공사를 끝내고 조선개국일인 8월 5일 개막식을 마친 다음주 문화체육관광부 국어민족문화과로 가게 되었다. 당시 학예실장은 3~4달 전시도면을 봐주고 오라고 출장 다녀오듯 쉽게 말씀했지만 그 뒤로 14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글박물관 일을 하고 있다.
2009년 한글 세계화라는 정부 과제와 한글학회를 비롯한 한글단체의 염원이 부합하여 한글홍보관 성격의 ‘한글문화관’이 발의되었고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러나 이듬해 박물관으로 설립 근거가 변경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개관 시 한글실을 조성했던 필자가 급하게 본부로 가게 된 것이다. 2010년 당시 유인촌 문체부 장관에게 전시계획을 보고하자 건축설계에서 전시까지 꼼꼼하게 조언하던 모습이 엊그제만 같다.
국립 당위성 피력 … 희귀본 기증운동
세상일이 다 그러하듯 한글박물관에도 역경과 환희의 순간이 있었다. 2011년 신세경과 장혁이 참석한 거창한 착공식으로 공사는 시작되었지만 저가로 낙찰된 전시업체는 완성도가 떨어졌고 어린이체험관은 공사비조차 책정되어 있지 않았다.
노심초사하던 차에 구글코리아를 통해 후원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냈고 1년여 만에 100만달러의 후원이 결정되었다. 2013년 구글 본사 회장인 에릭 슈미트와 유진룡 장관이 한글박물관 강당에서 후원 증서 전달식을 가졌는데 이때 받은 100만달러로 한글놀이터의 전신 어린이체험관이 문을 열 수 있었다.
또한 한글박물관은 비슷한 시기 건립한 국립세종도서관과 함께 법인화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개관위원들이 서명한 성명서를 들고 홍윤표 위원장과 한글학회 회장이 담당 부처를 찾아 설득했고 문체부 국과장님들도 발로 뛰며 국립기관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또한 문체부는 2010년부터 박물관 건립의 사전 홍보로 기증운동을 벌였고, 박물관 건물도 생기기 전이라 수월치 않았는데 흔쾌히 마음을 연 분들이 있다. 그 중 조문제 서울교대 교수는 마치 브리티시 뮤지엄의 한스 슬로운 경처럼 일제강점기 희귀본 등 환산하면 수억원의 자료를 희사해 줬다. 이러한 기증품은 3여년 동안 국립중앙도서관 서고를 차용해 보관하였다.
한글이 갖는 무한한 가능성
2014년 2월 직제 시행령 이후 초대관장이 임명됐다. 문체부 담당 국장시절부터 한글박물관에 깊은 애정을 가진 분이었고 자료관리팀 글꼴센터 고객지원팀을 만들었다.
필자는 관장님 밑에서 디지털한글박물관과 한글도서관 구축, 구술채록사업, 한글꼴큰사전, 글꼴연구, 글꼴기획전시, ICOM 언어문자박물관 국제위원회 신설 준비 등 새로운 사업들을 발굴 확장하였고 그 뒤로 오신 8명의 관장도 박물관 조직의 정상화와 예산·인력 확충, 국제 교류, 공격적인 홍보 등 열정적으로 헌신했다. 모든 관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백년지대계란 말처럼 국립한글박물관의 앞으로 백년을 상상해 본다. 조직도 유기체와 같다.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사업을 다듬어야 생명력이 유지된다. 건강한 조직의 원동력은 조직원의 믿음과 열정이 아닐까. 8만여 소장품을 중심으로 연구 전시 교육 등 기본에 충실하는 한편, 한글의 선한 창제정신과 한글이 갖는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인류 평화와 공생에 기여하는 박물관으로 도약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