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문자’로서의 한글을 위한 제언

2024-10-10 13:00:04 게재

K-팝, K-드라마로 시작된 열풍은 K-영화, K-푸드 등 K-문화 전반으로 번지고 있고 이에 따라 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늘고 있다. 한류 문화의 중심에 '한글'이 있는 것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단으로서뿐 아니라 효율적인 문자 체계로서의 한글을 문자로서 차용하는 사례가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한글이 명실공히 널리 통용되는 'K-문자'의 시대가 오리라는 것은 충분히 기대 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해양학 관련 국제협력 분야에서 활동해 오면서 한글의 과학성, 아름다움, 창제 역사 등에 항상 자부심을 느껴 왔다. 한글은 한국어의 표기뿐 아니라 외래어, 외국어의 표기도 대부분 가능하다. 다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몇 가지 소리를 표기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필자는, 현대 한글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6개의 영어음소 F, L/R, Th(θ, ð), V, Z를 새로운 한글 음소로 도입하여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표〉 참조).

〈표〉 새 음소의 용례와 현행 표현방식 비교

①은 ‘F’로 파열음인 ‘P’와 달리 이빨이 입술 위에 놓인 상태에서 나는 소리이다. 전혀 다른 소리인 pine과 fine을 현재는 같은 단어인 ‘파인’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②는 ‘L’과 ‘R’로 역시 한글 표기에서 구별할 수 없다. ‘ㄹ’ 이 이미 한글에 있으나 한국어에서는 위치에 따라 혀가 천장에 닿은 소리인 ‘L’이나 혀가 닿지 않고 나는 ‘R’에 가까운 소리가 난다. 따라서 현재 한글 표기에서는 전혀 다른 단어인 right와 light를 구분할 수 없다. ③ 윗 이빨이 혀 앞쪽에서 나는 소리인 θ (Th)는 한국어에 없는 소리로 대개 ‘ㅆ’이나 ‘ㄸ’로 둘러 표현한다. 예를 들어 ‘씽크탱크’, ‘띵크탱크’ 등이다. ④ 윗 이빨이 혀 뒷부분에서 미끌어지며 나는 소리인 ð (Th)는 한국어에 없는 소리로 대개 ‘ㄷ’로 표현한다. 그러나 ‘ㄷ’은 ‘D’에 대응하는 소리이다. ⑤ ‘V’는 ‘F’의 유성음으로 이빨이 입술 위에 놓인 상태에서 나는 소리다. 현재 ‘B’로 표기한다. 다른 단어인 base와 vase를 구별해서 표기할 수 없다. ⑥ ‘ㅅ’소리의 유성음인 ‘Z’ 소리는 현대 한국어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를 표기하기 위해 ‘ㅈ’을 사용하고 있으나 입 안쪽에서 내는 소리인 ‘ㅈ’과 이빨소리인 ‘Z’는 다른 소리이다. 현재는 ‘John’과 ‘zone’이 ‘존’으로 똑같이 표기된다.

위에서 제시한 기호의 모양은 하나의 예시로 보면 된다. 한글학, 언어학, 글자체, 그래픽 등 제 분야 전문가들이 논의를 통하여 한글의 아름다움과 사용 편의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모양과 컴퓨터 자판 배치를 정하면 된다.

여기서 제안한 6개의 음소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사용되고 있으나 현재의 한글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소리들이다. 특히 세계 공용어 역할을 하고 있는 영어에 기반한 단어를 한글로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한글의 범용 문자로서의 유용성을 높여줄 것이다. 이 6개의 음소의 다수는 영어 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어나 아랍어, 아시아 언어에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한글이 만들어진 지 578년이 지났지만 공용문자로 인정된 것은 지난 백년 남짓이고 띄어쓰기, 맞춤법이 갖추어진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또한 현대 한국어에서 안 쓰이는 4자는 폐기되는 등 시대에 따른 변화를 겪어 왔다. 이제 한글은 한국인만의 문자는 아니며 한국어만이 아닌 다양한 언어를 표현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음소의 추가는 한글의 표음 능력을 넓혀 우리가 외래어를 좀 더 정확히 표시하고 발음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한글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시대에 따라 언어도 바뀌고 용도도 달라진다. 이제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한글의 진화를 공론화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유신재 국제해양연구위원회 의장